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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⑥ 부산 밀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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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3대째 밀면을 만들고 있는 내호냉면의 이춘복(60)씨와 아들 유재우(34)씨. [조용철 기자]

부산 밀면은 찬 국수다. 중면 굵기의 국수에 차게 식힌 육수를 부어 먹는다. 육수는 집집마다 제각각이다. 어떤 집은 김치국물을, 또 다른 집들은 쇠고기 육수나 돼지뼈 육수를 부어주기도 한다. 국수도 어느 집은 쫄깃하고, 또 어느 집은 덜 쫄깃하기도 하다. 이렇게 집마다 맛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부산 밀면이라고 부른다.

이 국수는 부산 향토 음식이지만 뿌리 깊은 전통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6·25 전쟁 통에 피란민과 섞여 들어온 음식이다. 이북에서 온 피란민들이 그리운 고향 음식, 냉면을 부산 실정에 맞게 개조해 만들어 먹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래서 ‘냉면의 사촌’으로도 불린다.

원조 격으로 꼽히는 밀면 집인 부산시 우암동의 ‘내호냉면’이 이를 증명해 준다. 이 집은 57년째 그 자리에 있는 밀면 집이다. 우암동은 원래 가축검역소가 있던 자리였는데,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차지하며 거대한 피란민촌이 됐다. 이 집을 처음 연 이영순(1979년 작고)씨는 흥남 출신이었다. 흥남에서 ‘동춘면옥’이라는 냉면집을 했던 이씨는 흥남 철수 때 부산으로 피란 와 52년 내호냉면을 열었다. 이 집은 딸에 이어 지금은 외손자인 유상모(62) 사장이 이어가고 있다.

유 사장은 “메밀(평양냉면)이나 고구마 전분(함흥냉면)을 구하기 어려워 당시 흔했던 미군부대 구호품인 밀가루와 감자가루를 섞어 쫄깃한 면을 만들었다. 여기에 사골을 고아서 냉면 육수를 만들어 국수를 만들어 팔았다”고 말했다. 이게 부산 밀면의 효시였다.

하지만 지금의 부산밀면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69년 부산 동의대 인근에서 문을 연 ‘가야밀면’이 부산밀면의 중시조로, 지금의 밀면 형태를 잡은 주인공이다. 가야밀면에 이르러선 100% 밀가루면으로 바뀐다.

“당시 부산에는 구포국수가 유명했는데 그건 건국수였어. 그래서 새로운 면을 만들어 보자며 이것저것 많이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밀면이야.”

가야밀면 주인 김봉만(74)·최말순(69) 부부의 설명이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인기가 없었어. 원래 우리 집은 냉면도 팔고, 자장면도 팔고, 여러 종류의 면을 팔았지. 그런데 몇 년 지나서는 ‘밀면 맛이 색다르다’며 밀면만 찾았어. 그래서 다른 메뉴는 접고 밀면만 팔게 된 거야.”

지금은 국수를 기계로 뽑지만 당시만 해도 일일이 반죽을 손으로 치댔다. 쫄깃한 면발을 위해 보통 국수 만들 때보다 수십 번 더 치대야 했다. 최 할머니는 “문을 닫고 나면 어깨와 팔이 빠지는 듯 아팠다”고 기억을 더듬는다.

면만 아니라 육수도 바뀐다. 돼지뼈와 갖은 한약재를 넣어 만들었다. 육수의 색깔이 갈색이며 한약 냄새가 나는 이유다. 이 가야밀면이 70년대 말부터 부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밀면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가야밀면은 지점을 한 곳도 내지를 않았는데 부산 전역에 ‘가야’라는 상호를 붙인 밀면집이 많다. 이 집이 ‘원조’로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면은 서울에서는 찾기 힘들다. 『밀면에 관한 연구결과 보고서』를 낸 신라대 식품영양학과 김상애(65) 교수는 기후와 사람들의 성격이 다른 데서 이유를 찾는다.

“서울의 여름 날씨가 습도가 낮다면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는 탓에 무덥고 후텁지근해 밀면의 시원한 맛을 더 느낄 수 있죠. 밀면은, 냉면과 달리 겨울엔 잘 먹지 않는 여름 음식인데 여름 기후가 이렇게 다르니 받아들이는 게 다른 거죠.”

또 한 가지는 경상도 사람의 단순하고 급한 성격에 밀면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밀면은 심플한 음식이에요. 육수에 면만 넣으면 되니까요. 후다닥 빨리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부산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 맞는 음식이 없죠.”

이석희 기자, 조용철 기자

협찬: (주)면사랑
다음 회(7월 9일)는 ‘콧등치기 국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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