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 시인 네번째 시집내고 케냐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해명되지 않는/삶의 틈서리에 앉아/이 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남자의/뒷등을 따뜻이 덮어줄 이여/흙 같은 살 한 줌의/그리움이 깊고 부드러우면/이런 시간엔 반드시 어디쯤에서/내 사랑을 기다리게 된다/아직은 가질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사랑. " 나이에 상관없이 하얗게 밤새우는 그리움은 있다.

황학주 (44) 씨가 최근 펴낸 네번째 시집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혜화당刊)에는 중년 이후에도 끝내 저버릴 수 없는 그리움과 그 그리움이 남긴 상처의 아름다운 언어들이 가득하다.

위 시 '나는 밤 두 시에도 버스를 기다린다' 한 부분에서 볼 수 있듯 가질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사랑,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아린 언어들이 우리에게 아물 수 없는 그리움의 상처를 돌려주고 있다.

87년 등단한 황씨는 문단에는 세상 시름은 혼자 다 짊어지고 시를 몸으로 보여주는 시인으로 비친다.

실연 (失戀) 으로 강진 바닷가에 홀로 내려가 조가비만한 집 짓고 사는가 싶더니 예천.고흥 등지를 헤매다 어느날 서울 도심의 술집에 나타난 황씨의 어눌하고 죄지은 표정이 그대로 시다.

진득하게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유목민, 그게 시라는 것을, 그게 그리움이라는 것을 황씨는 아프게 보여주고 있다.

아내여도 좋고 떠난 연인이어도 좋을 '그대' 를 향하여 황씨는 시를 쓴다.

그리고 그대를 떠나며 한없이 한 (恨) 만 쌓아간다.

그래 제대로 울려나올수 없이 컥컥거리는 아픈 삶과 시어들이 그리움에 목마른 영혼들을 촉촉이 적신다.

황씨는 다시 시집 한 권만 덜렁 떨궈놓고 지난달 말 아프리카 케냐로 떠났다. 선교사로 그 곳 사람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아니 잡으면 자꾸 멀리 달아나는, 아직 해명되지 않은 그리움의 실체를 찾아서 세상 끝 오지로 떠났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