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암환자들 마음의 병 고쳐주고 싶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17일 오후 2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지하 7층 체력단련실. 20명의 암환자가 새소리를 들으며 요가 매트 위에 누웠다. 어떤 사람은 트레이닝 복을 입었고 다른 어떤 사람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호흡은 모든 것의 근원이에요. 호흡을 고르게 해야 몸이 가벼워집니다.”

자원봉사자 김수미(53·여·사진)씨의 차분한 목소리가 10분가량 계속됐다. 환자들은 지그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어서 요가 동작 시간. 환자들은 한쪽 팔로 다른 쪽 어깨를 잡으며 병실에서 뭉친 근육을 풀었다. 앞에 앉은 김씨가 왼쪽 팔을 들어 오른쪽 귀에 붙였다. 수술 뒤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게 된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동작이다. 20여 가지의 동작이 이어졌다.

두 시간가량 요가 시간이 끝나자 환자들이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일주일 간의 힘들었던 얘기를 털어놨다. 1년 정도 요가를 배웠다는 60대 여자 환자는 “유방암 수술받고 처음에는 팔을 올리기조차 힘들었는데 요가를 하면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40대 남자 암 환자가 항암제를 맞아서 그런지 얼굴이 까매졌다고 하자 다른 환자들이 “약이 잘 듣는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씨는 이런 모습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요가 강사’ 김씨는 이 병원 최한용 원장의 부인이다. 지난해 1월부터 이 병원 암 센터에서 환자들에게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김씨는 자신이 원장 부인이란 사실이 알려지길 꺼렸다. 괜히 환자들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다.

김씨가 요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2년. 남편을 따라 미국 연수를 갔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척추를 심하게 다쳐 병원에 누워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6개월 병원 신세를 진 뒤 휠체어를 탔다. 병원의 권유로 요가를 시작했다. 김씨는 “평생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살 것 같았다”고 말했다. 1년이 지나자 진통제를 먹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이렇게 시작한 요가를 15년간 계속하고 있다. 거르는 날에는 척추에서 통증이 온다. 본인이 요가의 효과를 보면서 다른 환자들에게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년 전 삼성서울병원에서 가끔 환자들에게 요가를 가르쳤고 지난해 1월 암 센터가 문을 열 때 정식으로 무료 강사가 됐다.

김씨는 암 환자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지난해와 올해 일주일 동안 인도 요가학교에 다녀왔다. 올해부터 인도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대전의 한 환자는 퇴원한 이후에도 매주 서울로 와서 김씨에게서 요가를 배운다. 어떤 환자는 치료가 끝나 다음달 직장에 복귀한다면서 최근 요가 교실 환자들에게 음료수를 돌렸다. 김씨는 이럴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환자들의 호응이 늘자 이달부터 강좌 횟수를 월 4회에서 6회로 늘렸다. 김씨는 “항암제로 암세포를 없앨 수 있지만 마음의 암세포는 없애지 못한다”며 “요가동작과 명상을 통해 마음의 암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강기헌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