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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엷어진 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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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 2국>
○·이세돌 9단(1승) ●·쿵제 7단(1패)

제16보(113~120)=이 판을 분석한 박영훈 9단은 흑이 좌상에서 패를 건 것, 그리하여 좌하 흑을 내준 것을 일차 실패로 지목했다. 그러나 흑의 진짜 실패는 ‘좌상’이 아니라 ‘중앙’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중앙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에-그때만 해도 흑이 공격권을 쥐고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백 집은 좌하 40집에 상변 13집, 도합 53집 정도였다. 흑은 좌변과 좌상 20집에 우상 15집, 우하 23집으로 모두 58집 정도였다. 덤 내기에는 약간 미달이지만 공격의 주도권을 쥔 흑이 이를 이용해 중앙의 지배력을 키운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하나 지금은 모두 흘러간 꿈이 됐다. 113과 114를 조금만 먼저 교환했어도 지금처럼 백이 중앙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더욱 억울한(?) 점은 백은 뒷맛이 몹시 나빴던 좌하에 한 수 가일수(백△)를 하고도 중앙을 장악했다는 사실이다.

A로 잡는 수는 크지만 쿵제에겐 그럴 여가가 없다. 그는 걸레가 된 중앙을 수습하기 위해 115로 쓸쓸히 발길을 돌린다. 하나 구차하게 삶을 구하다 보니 장차 백B가 선수다. 하변 백 집이 5집 정도 늘어난 것이다. 이게 바로 엷어진 죄다. 중앙만 튼튼했으면 흑은 C로 늘 수도 있고 거꾸로 백◎ 두 점을 잡을 수도 있었는데 그런 쏠쏠한 재미가 모두 사라지고 아픔만 남게 됐다. 116, 118도 기분 좋은 선수. 그 다음 120으로 차단하니 흑 석 점의 갈 길이 아득해 보인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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