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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연습으로 준비한 완벽한 유머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웃음이 사라진 시대다. 가라앉은 경제, 권력자의 비리 의혹…. 들리느니 암울하고 짜증나는 소식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마음을 풀어줄 웃음이 필요하다. 웃음은 희망·자신감·성공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웃음을 잃어버린 국민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 유머의 리더십을 찾아 처칠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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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육중한 체구에 회색 중절모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입에는 시가를 문 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리는 모습이다.

우울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일까? 밝은 웃음(smile)을 주는 리더십 아닐까? 웃음은 희망·자신감·성공과 동의어라는 점에서 요즘 웃음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일 듯싶다.

오만·독설·독선 비판에도 진정한 웃음으로 감동 선사 #리더십 연구 | 처칠의 유머 정치

역사 속의 위인 중에서 웃음의 리더십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다. 처칠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 여유로운 웃음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민에게는 마음속의 웃음, 즉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메시아적 영웅이었다. 처칠 리더십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유머 리더십을 간략히 살펴본다.

# 장면 1
제2차 세계대전 중 대서양헌장을 둘러싸고 처칠 영국 총리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백악관을 방문한 처칠의 방문을 열다 때마침 목욕 중이던 처칠의 알몸을 보고 말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처칠의 알몸을 본 루스벨트는 당황했다. 처칠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보십시오. 대통령 각하! 저희 영국은 미국에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습니다.”어색한 분위기는 금방 부드러워졌고, 정상회담은 웃음 속에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 장면 2
정계에서 은퇴한 80세의 처칠이 한 파티에 참석했다. 바지 지퍼가 열린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이를 본 한 귀부인이 짓궂게 물었다.

“남대문이 열렸습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처칠은 바지춤을 내려다보더니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냥 두세요.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이미 죽은 새는 새장 문이 열려도 밖으로 나올 수 없으니까요.”

‘20세기의 최대 거인(巨人)’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인간’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 ‘불세출의 웅변가’….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에 대한 찬사들이다. 이 수많은 찬사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아마 ‘유머 리더십의 대가’라는 평가일 것이다.

처칠은 세계적 위인 중에서 링컨·루스벨트와 함께 가장 탁월한 대중연설가인 동시에 ‘가장 유머 감각이 뛰어난 지도자’로 손꼽힌다. 처칠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육중한 체구에 회색 중절모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입에는 시가를 문 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리는 모습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희망과 자신감을 나타낼 때마다 만들어 보이는 승리의 V자를 최초로 ‘창안’한 사람이 바로 처칠이다. 처칠은 오늘날 스피치(speech)나 대중연설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교과서와 같은 존재다. 처칠의 화법 속에는 멋진 표현이 많고,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감동이 있으며, 행동으로 옮기게 만드는 공감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머가 넘친다. 처칠의 연설이 히틀러의 연설보다 빛을 발하는 이유는 살기등등한 호소력이 아니라 심금을 울리는 설득력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유머가 반짝반짝 빛난다. 처칠이 있는 곳에는 항상 여유와 자신감이 넘쳤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력(磁力)이 강하게 발생했다.

그렇다고 처칠이 청산유수처럼 말을 술술 풀어내는 달변가도 아니었고, “여러분!”을 목청껏 외치며 두 주먹을 치켜드는 웅변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입심 좋은 개그맨처럼 우스갯소리를 연방 내놓는 가벼운 재담가도 아니었다. 그는 적재적소에 ‘유머의 무기’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던 소프트 리더십(Soft leadership)의 달인이었다.

독일군과 치열한 전쟁을 벌일 때, 정적(政敵)과 언쟁을 벌일 때, 총선에서 패배했을 때, 정상회담을 벌일 때, 파티 석상에서 실수했을 때, 이럴 때마다 재빨리 튀어나온 그의 ‘창과 방패’는 늘 유머였다. 처칠의 뛰어난 유머 감각은 부모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처칠은 1874년 블렌헤임(Blenheim)궁에서 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랜돌프 경은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대범했지만 상당히 변덕스러운 성격이었고, 어머니 제롬 여사는 대단한 미인이었지만 자유분방하고 경솔한 성격으로 결혼 후에도 외간남자와 어울려 다녔다. 아버지는 46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어머니는 장수하면서 아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후견인이 되어주었다. 아버지로부터 정치력과 대범함을, 어머니로부터는 낭만적 기질을 물려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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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출신인 처칠은 유난히 목욕을 좋아해 전선을 시찰할 때도 주석으로 만든 욕조를 가져갔다고 한다. 전선을 시찰 중인 처칠.

말더듬이 고치려 매일 낭독 반복 처칠의 다채로운 삶도 유머 능력을 함양하는 데 기여했다. 처칠은 왕립군사대학을 졸업한 이후 종군기자로 쿠바·인도·이집트·아프리카전투에 참가해 숱한 사선(死線)을 넘나들면서 삶의 내공을 키워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53년에는 전쟁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과 글솜씨도 뛰어났다. 물론 회고록은 처칠의 전투 경험담을 담은 소설로 문학성보다 역사성을 높이 평가받았고, 당초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려다 일부 비판적 여론 때문에 노벨문학상 쪽으로 선회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가 문학적 기질이 뛰어났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감수성이 얼마나 예민했는지, 격정적 대화를 하거나 연설문을 쓰면서 어린애처럼 흐느껴 울기도 했고, 나중에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처칠이 보여준 유머 리더십의 원천은 ‘훈련의 힘’이었다. 어릴 때 말더듬이였던 처칠은 언어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위인전을 비롯한 수많은 서적을 달달 소리 내어 읽었다.

매일같이 낭독을 반복하자 발음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에는 라틴어와 자연과학을 싫어하고 영어를 유난히 좋아해 ‘영어의 천재’로 불릴 정도였다. 처칠은 훗날 “영어 공부에 매진한 덕분에 고귀한 정통 영어 문장구조의 정수를 뼛속까지 익히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정치인이 된 뒤 인용했던 명문장의 상당부분이 학창시절에 배웠던 영어, 예컨대 성경이나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인용했다.

여기에는 피나는 노력과 철저한 사전 연습이 있었다. 처칠은 언제 어떤 유머를 구사해야 할지 미리 준비했고, 심지어 거울을 보며 얼굴 표정이나 제스처, 입술 모양까지 여러 번 연습함으로써 ‘완벽한 유머’가 나오도록 갈고 닦았다. 언젠가 닉슨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처칠의 아들에게 아버지가 그토록 즉흥연설과 유머에 뛰어난 비결을 묻자 처칠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잘할 수밖에요. 아버지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연설문을 쓰고 외우는 데만 보냈으니까요.”

1937년, 처칠은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열린 조촐한 저녁 만찬에 가고 있었다. 목적지에 이르렀는데도 처칠이 내릴 생각조차 하지 않자 운전기사가 “각하, 다 왔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처칠은 그제서야 말했다.

“잠시 기다리게. 즉흥연설을 할 텐데 무슨 말을 할까 고민 중이네!”

처칠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즉흥연설에 대해서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그의 즉흥적인 유머 역시 입에서 툭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다가올 상황을 예측하며 철저하게 대비해 두었던 ‘준비된 유머’였던 것이다. 이제 고비마다 처칠이 어떻게 유머의 힘을 발휘했는지 예를 들어보자.

앞에 소개한 <장면 1>을 보면, 처칠은 자신의 알몸을 보고 당황해 하는 루스벨트에게 “우리 영국은 미국에 숨기는 것이 없다”며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정황으로 볼 때 처칠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루스벨트에게 자신의 알몸을 보여줌으로써 ‘영국의 순수성’을 강조하려고 했던 의도가 농후하다.

강대국 정상 간의 미묘한 신경전, 영국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 처칠의 속셈…. 복잡한 상황 속에서 처칠은 자신의 알몸을 보여줌으로써 경직된 분위기도 누그러뜨리면서 영국의 입장을 솔직하게 설명하는 기회도 동시에 갖게 된 것이다. 딱딱한 대화보다 술자리 대화, 술자리 대화보다 목욕탕 대화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인간관계론의 기본 원리를 처칠은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목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귀족 출신인 처칠은 유난히 고급스러운 목욕을 즐겼다.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전선을 방문할 때조차 꼭 가져간 것은 주석으로 만든 고급 욕조였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따뜻한 물을 채운 고급 욕조에 몸을 담근 채 휘파람을 부는 처칠을 상상해보자. 아마 그러한 여유와 배짱이 불세출의 영웅 처칠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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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자신의 연설과 유머가 돋보이도록 이미지 관리에도 신경을 썼다. 트렌치코트 차림의 처칠 동상.

“당신 남편이라면 독이든 커피를 마셔버리겠다” 그렇다면 처칠은 정적(政敵)을 어떻게 상대했는가? 히틀러가 조만간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아무리 경고해도 귀담아 듣지 않는 정적들에게 처칠은 어떤 방식으로 ‘유머의 펀치’를 날렸을까?

장소는 국회의사당 발언대. 처칠은 엉뚱한 서커스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어린 시절 저는 서커스를 즐겨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모가 절대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쇼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차마 눈을 뜨고는 보지 못할 끔찍한 장면이라고 하더군요. 그 쇼는 ‘무골인간’(Boneless Wonder)이라는 공연이었습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후에야 그 사람을 보게 됐습니다. 그 사람을 어디서 봤는지 아십니까? 바로 여기 상원 국회의사당입니다. 저기 맨 앞 좌석에 무골호인들이 앉아 있습니다!”

처칠은 히틀러의 야심을 간파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유화적 태도로 일관하는 총리와 외무장관을 ‘뼈도 없는 무골호인’으로 묘사한 것이다. 정적들을 향해 거친 말로 비판을 쏟아 붓기보다 ‘줏대도 없고 보기에도 징그러운 인간’이라고 우회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유머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유머는 찾아 보기 어렵고 대신 욕설과 삿대질, 고함이 난무하는 우리 정치인들이 보고 배울 만한 대목이다. 처칠은 이처럼 상대를 공격할 때 치명적 직접화법보다 우회적 간접화법을 곧잘 구사했고,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우화(寓話)를 창작해 내기도 했다. 독일군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영국 전투기의 생산을 촉구할 때는 ‘사자와 양의 우화’를 들었다.

“(독일) 베를린의 동물원 우리에는 사자와 양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관광객이 엄청나게 모여들었습니다. 어떤 관광객이 관리인에게 물었습니다. 저렇게 순한 사자를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사자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양이지요. 매일 아침 새 양을 우리에 집어넣어야 하거든요.”

독일군을 겉으로는 온순한 척하면서 소리 없이 양을 잡아먹는 사자에 비유하면서 사자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첫 여성의원인 에스더 의원이 잔뜩 화가 나서 “내가 당신의 아내라면 커피에 독약을 타겠다”고 독설을 퍼붓자 “내가 당신의 남편이라면 그 커피를 곧바로 마셔버리겠다”고 응수했던 처칠이다.

처칠의 유머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성(性) 관련 유머가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여자문제가 복잡했던 것은 아니다. 처칠 부부는 자주 떨어져 지냈지만 장문의 편지를 하루 걸러 주고받을 정도로 부부 금슬이 좋았다. 부인 클레멘타인 호지어(C. Hozier)는 정치 자체를 싫어했지만 남편에 대해서는 열정적 지지자이자 우군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성(性) 관련 유머를 많이 한 이유는 당시 남성우월주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이 자연스럽게 유머의 소재로 등장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처칠의 성 관련 유머를 보면 여성을 비하하거나 저속하지 않고 남녀 모두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고급 유머라는 점이 돋보인다.

런던의 한 클럽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입회원들이 카드를 뽑아 그 카드에 쓰인 주제에 대해 연설하는 절차가 있었다. 처칠이 뽑은 카드에는 ‘섹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처칠은 그 카드를 잠시 바라보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

“섹스는… 제게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칠의 부인은 꽤 미인이었다. 1900년, 처칠이 하원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했을 때였다. 경쟁 후보가 합동 정견 발표회장에서 처칠을 공격했다.

“처칠은 늦잠꾸러기라고 합니다. 저렇게 게으른 사람을 의회에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이에 처칠은 여유만만하게 맞받았다.

“여러분도 저처럼 예쁜 마누라와 함께 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견장에서는 폭소가 터졌고 처칠은 금배지를 달았다. 상대방의 공격에 당황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재치로 맞받아치는 빠른 두뇌 회전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26세의 처칠이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미국 워싱턴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한 미모의 여성이 공화당의 남부재건정책을 반대한 사실을 들어 “처칠 의원님! 지금 의원님 앞에 재건(Reconstructed)을 반대한 사람이 있습니다”라며 처칠의 반응을 살폈다. 처칠은 깊게 팬 그의 가슴을 힐끔 쳐다본 뒤 말했다.

“부인! 부인께서 재건(Reconstruction·유방재건수술)하신다면, 그것은 신성모독행위가 될 것 같습니다.”

재건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대비해 폭소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처칠의 성 관련 유머는 이외에도 많다. 한번은 처칠이 저녁 만찬에 초대받고 음식 평을 해달라는 주문을 받자 입맛을 쩝쩝 다시며 대답했다. “샴페인이 시가처럼 건조했다면, 포도주가 수프처럼 시원했다면, 닭가슴살이 웨이트리스 가슴처럼 풍만했다면, 웨이트리스가 의원들만큼 다정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처칠은 유머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부드러운 유머는 날카로운 비난보다 훨씬 위력적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의 원리를 꿰뚫고 있었다. 웅변술이나 화법과 관련한 책을 출판했을 정도로 그는 ‘언어의 힘’을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처칠이 연단 위에 오르려다 넘어져 청중들이 웃자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제가 넘어져 국민이 즐겁게 웃을 수 있다면, 다시 한번 넘어지겠습니다!”

국민에게 웃음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넘어질 수 있다는 자세야말로 탁월한 정치감각이 아닐 수 없다. 처칠은 자신의 유머가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나 상대방을 웃기는 차원을 넘어 국민에게 진정한 웃음을 선사하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칠은 전쟁터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두려움에 떨고 있던 부하 장교들에게 처칠은 말했다.
“좀 웃으시오. 그리고 부하들에게도 웃음을 가르치시오. 웃기 어렵다면 최소한 미소라도 지으시오.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 참호에서 나오시오!”

국가지도자에게 유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엇보다 평상심을 준다. 매일 복잡한 문제로 극도의 스트레스에 파묻혀 있는 국가지도자에게 여유로움을 줌으로써 평상심을 유지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을 높여준다. 유머가 있는 지도자는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여유만만하고 침착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유머는 정신적 여유가 없으면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유머가 있는 지도자는 포용력과 통합의 리더십이 강할 수밖에 없다. 처칠과 마찬가지로 유머의 리더십이 돋보였던 링컨·루스벨트·간디와 같은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반대파를 껴안는 능력이 탁월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퇴임 이후와 사후까지 높이 평가받는 이유도 그의 유머 덕분이다. 레이건은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유머를 건네 ‘담대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널리 과시했다. 유머는 작위적으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며 정신적 안정을 찾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유머 능력이다.

유머는 단순히 상대방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능력이요, 리더십이다. 국가지도자의 유머는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지도자가 여유로운 유머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희망을 발견하며 용기를 얻는다. 더구나 전쟁이나 경제불황, 재난, 테러와 같은 대형 위기가 몰아쳐 국민이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때 국가지도자가 던지는 한마디의 유머는 국민에게 더할 나위 없는 힘을 불어넣어준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에게 어떤 유머를 선사했던가? 딱딱함과 무미건조함 아니면 경솔함과 가벼움이 횡행하지는 않았는가? 처칠의 말이 더욱 빛났던 이유는 자신과 영국 국민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1940년 6월4일,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함락하고 막 영국을 공격하려 할 때도 처칠은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입에 시가를 물고 승리의 V자를 그렸다. “우리는 해안에서 적과 싸울 것이며, 우리는 상륙지에서 적과 싸울 것이며, 우리는 도심과 구릉에서 적과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디오를 듣고 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옆자리의 최측근 해리 홉킨스에게 말했다.

“이봐, 해리! 저 영감이 총리로 있는 한 영국은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 같군. 영국을 지원하는 것은 프랑스처럼 쓸모 없는 곳에 투자하는 것과는 다를 것 같아.”

처칠의 확신에 찬 연설로 영국은 나치 독일의 침략을 확실히 방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세계 만방에 심어주었고, 미국은 그 연설을 계기로 중립적 위치에서 돌아서 영국에 군대를 파병했다. 처칠은 자신의 연설과 유머가 더욱 돋보이도록 이미지 관리에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 부친에게 물려받은 금시곗줄을 목에 걸고 군청색 줄무늬 스리피스 양복을 입고 다녔다.

넥타이는 푸른 눈을 돋보이게 하는 청색 물방울 무늬였으며, 와이셔츠 소매 끝동에는 영국 왕실 문양이 금색으로 수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슴주머니에는 늘 깨끗한 흰 손수건이 꽂혀 있었다. 유난히 돋보이는 모자는 런던의 유명 재단사가 만들어준 맞춤형 중절모였다.

연설은 교향곡처럼 리듬이 있어야 처칠은 언어에도 리듬이 있다고 보았다. 가끔 베토벤의 제5교향곡 <운명>에 자주 나오는 대표 리듬인 ‘바,바,바,밤!’을 큰소리로 외치기도 했는데, 자고로 연설은 교향곡처럼 리듬이 있어야 하며, 그 리듬은 영웅교향곡처럼 마지막 순간에 액센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칠도 인간이기 때문에 허점투성이였다. 때로는 오만, 독설, 독선, 귀족적 생활이 도마에 오르내렸다. 1947년 노동당 보건상 시절에는 보수당을 향해 ‘기생충’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는가 하면 자신은 ‘우둔한 고집불통’ ‘정계의 피터팬’, 심지어 ‘블렌하임의 들쥐’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21세기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이 ‘처칠의 리더십’을 다시 찾는 이유는 웃음이 없던 시대에 진정한 웃음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처칠은 말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면 말하는 사람이 먼저 감동해야 한다!”고. 세계적 경제불황 속에서 웃음을 잃어버린 우리 국민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유머의 리더십’이 아닐까 한다.

최진 지도자의

리더십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리더십 전문가. 고려대 법대 졸업 및 동 대학원 행정학 박사.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정책홍보실장, 고려대 연구교수 역임. 현재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사단법인 한국리더십개발원장, 경희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로 <대통령리더십 총론><대통령리더십> 외 다수가 있다.

글■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cj0208@o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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