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선거수준과 무혈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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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늘의 우리 사회는 많은 일을 다수결원칙 위에서 선거로 결정하고, 회의로 해결한다. 그런데 회의나 선거의 기능과 역할을 과용 (過用) 하고 과신 (過信)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진리와 진실과 최선은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수학적 진리도 전세계 수학자들이 모여 다수결로 결정한 것이 아니고, 다수결로 변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조인들의 오판 (誤判)에서도 볼 수 있듯 '진실' 이란 발견하고 확인해야 할 대상이지, 다수결로 결정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어느 사건이나 거기에 참여한 관계인사들이 죽은 지 50년이 지나야 비로소 '역사적 사실 (史實)' 이라 하고, 그 전에는 '시사적 사건' 으로 다루는 것이 학문적 상식이다.

최선을 추구하는 데도 다수의 결정이 차선 (次善) 이하인 경우가 적지 않다. 과학적 발명이나 예술적 창작, 유명한 그림이나 조각물, 또는 문학적인 명작도 다수결에 의해 저작되지 않는다.

다수를 관계하는 정치에서 옛날에는 천명 (天命) 이니 천자 (天子) 니 하던 말이 집권 명분이었으나 지금은 민주니 선거니 하는 다수결이 통치 구실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독재 권력' 도 무섭지만 이를 막는 선거에서 '다수의 폭력' 은 더욱 두려운 것이다.

더욱이 애국심이 없는 선거나 양심이 없는 투표는 그 해독이 극심해 자타공멸 (自他共滅) 까지 초래하므로 때로는 애국심으로 불타는 우국지사 (憂國之士) 의 독주 (獨走) 만도 못한 경우가 없지 않다.

선거나 회의가 핑계나 명분용으로 쓰일 때, 특히 객관적인 유자격자를 거부하고 비록 무자격자라도 유권자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어 하는 투표의 경우 이는 선거라기보다 '이해관계인들의 통계' 라고 함이 더 옳다.

내게 이익이 없어도 남의 편에 있는 유자격 후보에게 투표하는 선거의 질적 기초수준이 선행된 상태에서 선거의 양적 증가와 다양화가 따라야 한다.

지금 우리는 우리 선거의 질과 양과 수준이 통일국가 건설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도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전에는 유엔 감시 아래 남북 총선거가 자주 거론됐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잠꼬대 같은 헛소리로 통일이 되지도 않았지만, 바로 그 시기에 일어난 6.25라는 민족 자살전쟁으로 통일은 더욱 멀어졌다.

결국 전쟁으로는 휴전선이 이동될 뿐,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48주년 6.25를 앞두고 남북 지도자들이 다시 한번 자각, 확인해야 한다.

수백만 동포가 죽을 수 있는 전쟁에 의한 통일은 거부되고 예방돼야 한다.

민족생존은 조국통일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통일전쟁은 강대국의 무기판매 대목장이며, 동족상잔으로 설사 통일국가를 이루더라도 민족의 마음은 원한과 복수심으로 인해 분열된 채 몇 세기를 갈 것이다.

삼국시대말에 통일한답시고 나당 (羅唐) 연합군까지 만들어 생긴 지역 감정으로 지금도 우리는 정신적인 삼국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결국 좀더 늦더라도 통일의 기쁨과 효과를 남북 양쪽 동포들이 똑같이 느끼고 함께 즐기는 통일, 패자 없이 남북이 공동 성취자요 공동 승리자가 되는 통일, 한마디로 남북이 동업과 합작으로 성취하는 '무혈 (無血) 의 통일 방법과 순서' 를 추구하며 모색해 나가야 한다.

윤리적 자유선거가 없는 사회에는 힘에 의한 압제가 있게 마련이다.

선거의 양적 다양화보다 질적 수준 향상이 무혈의 통일국가 건설로 가는 확실하고 안전한 길이다.

이제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는 통일을 성급하게 이루고자 미국의 남북전쟁이나 스페인의 국민전쟁, 아니 지나간 6.25동란 같은 수치스러운 동족살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정권은 바뀌고 사상은 변해도 민족은 영원하다.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그 어느 정권이든 전쟁을 생각할 수 없도록 우리의 선거 수준이 양쪽의 무력 (武力) 수준을 능가하게 해야 할 것이다.

변기영 (천진암 성지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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