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내린 엘니뇨, 고개드는 라니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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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번에는 '누이' 의 심술이 시작되는가. 오빠격인 엘니뇨가 서서히 물러나면서 여동생격인 '라니냐' 가 고개를 쳐들고 있다.

남미대륙과 마주한 적도 부근 동태평양. 이 곳의 수온이 최근들어 부분적으로 정상 (섭씨 23~27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라니냐로 반전 (反轉) 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불과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최고 33~34도까지 치솟았던 바닷물이 급격히 식고 있는 것이다.

라니냐의 등장이 우려되는 것은 지구촌 기상에 미치는 '행패' 가 오빠 못지않기 때문. 우리나라도 최근까지 계속된 엘니뇨로 인해 계절이 뒤바뀌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등의 온갖 기상수난을 겪고 있다.

라니냐는 오빠와 심술의 스타일이 정반대일 뿐, 해악의 정도는 별 차이가 없다.

예컨대 엘니뇨가 여름철 엄청난 홍수를 불러온다면 라니냐는 극심한 가뭄을 초래하는 식이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라니냐는 95~96년에 걸친 것. 이로 인해 96년 2월 합천.산청 등 영남 남부지방의 기온은 24도까지 급상승, 역대 기록을 깼다.

또 이해 봄은 4월에 한차례의 가벼운 황사만이 찾아와, 엘니뇨가 극성을 부린 올해 10여차례 황사가 내습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70년대 이후 라니냐가 발생한 것은 70~71년, 73~74년등 모두 5차례. 이 때마다 양상이 다르긴 했지만 비가 내려야할 때 내리지 않고, 오히려 오지않을 때 많이 쏟아지는 등 홍수와 가뭄피해를 일으키곤 했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기상 전문가들은 하반기까지는 라니냐보다는 엘니뇨의 영향이 지배적일 것으로 예측한다.

기상연구소 오재호 (吳載鎬) 예보연구실장은 "엘니뇨나 라니냐의 영향이 한반도에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9~12개월후부터" 라며 "따라서 올 여름은 엘리뇨의 영향으로 비가 많고 무더울 확률이 높다" 고 말했다.

엘니뇨.라니냐가 발생하는 동태평양 해상은 한반도와도 멀리 떨어져 북미.남미등에 비해 영향정도를 직접 예측하기 힘든 편. 부산 부경대학 대기과학과 변희룡 (卞熙龍) 교수는 "라니냐가 생기면 태평양상에서 동풍이 거세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경우 가뭄이 심해질 확률이 많아지는게 통례" 라고 말했다.

라니냐.엘니뇨의 '세기' 가 일정치 않은 것도 정확한 예측이 힘들어지는 이유. 올해처럼 정상보다 수온이 7도 가량 치솟는 사상 최악의 엘니뇨라면 오히려 예측이 쉽다.

미해양대기국 (NOAA) 은 이번 라니냐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서로 널뛰기 관계인 엘니뇨와 라니냐의 특성으로 보아 한쪽이 치솟으면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분석에 바탕을 둔 것. 라니냐가 닥친다면 그 피해정도가 가장 큰 것은 동남아일대. 최근의 엘니뇨로 인해 가뭄.산불 등에 시달린 인도네시아 등은 라니냐시 엄청난 홍수로 이중고를 당해야 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 라니냐란 = 적도 무역풍이 평년보다 강해지면서 태평양의 해수면과 수온이 평년보다 상승하고, 적도 동태평양에선 차가운 바닷물이 솟아올라 저수온 현상이 강화된다. 엘리뇨의 반대현상이 나타나며 흔히 동남아 지역에 홍수를 초래한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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