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의 FUNFUN LIFE] 우리 집 강아지와 고양이 ‘사람’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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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의 강아지와 고양이들. 함께 있어도 무관심하다.

우리 집에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함께 산다. 개와 고양이가 함께 산다고 하면 모두 의아해하지만 이런 동거는 벌써 8년째다. 원래 고양이를 먼저 기르다 ‘치쓰’라는 몰티즈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름도 이 강아지의 종을 따 ‘마르치스~’ 하다가 치쓰가 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 강아지는 모두 ‘쓰’자 돌림이 되었다.

치쓰·옴쓰(푸들)·베쓰(시추)를 거쳐 지금은 ‘진쓰’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결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유명해진 진쓰는 산책을 나가면 나보다 더 인기가 많다. 치쓰랑 옴쓰는 예전에 청소하다가 문 열어 놓은 틈을 타 집을 나가버렸고, 베쓰는 아는 동생 성제(초신성)에게 주었다. 진쓰가 배 아파 낳은 ‘보쓰’도 감당할 수 없는 말썽쟁이여서 친구에게 보내야 했다.

고양이도 처음에는 6마리였다. 나리(히말라야), 퓨리(러시안 블루), 헤리(페르시안), 제리(친칠라), 베리(샴), 쎄리(페르시안) 모두 이혜영 언니가 주신 것이다. 아! 쎄리는 윤은혜가 줬다.

강아지 3마리에 고양이 6마리, 모두 9마리까지 키웠던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키웠나 싶다. 퓨리는 5년 전에 아파서 잃었고, 나머지는 내가 바쁜 탓에 엄마가 다 맡아 키우다 너무 힘드셔서 다른 곳에 분양할 수밖에 없었다.

동물이라면 조류를 빼놓고는 다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에 한동안 키우지 않았다. 중학교 때 반 친구한테 선물 받은 강아지를 자다가 내가 모르고 이불로 덮어서 숨 막혀 죽게 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시 동물에 의지하게 된 건 가수가 되고 난 뒤다.

신인 때 숙소 생활을 했는데 혜영 언니네서 지냈다. 힘든 스케줄을 마치고 지쳐서 숙소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마중 나오는 건 ‘나리’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비벼 주는 것도 ‘나리’다. 이전까지 강아지는 주인을 잘 따르고 고양이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자기들이 주인을 키운다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숙소 생활을 끝내고 난 뒤엔 매일 보던 나리가 그리워서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혜영 언니를 졸라 2001년 내 생일에 나리를 받아냈다. 그런데 아예 5마리를 다 주셨다는 거~.

강아지랑 함께 키우면 싸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게 웬일! 정말 전혀 서로 관심이 없었다. 거실에서 마주쳐도, 털이 닿아도 무시해 버린다.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는 건 단순히 루머일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강아지는 고양이에 장난치기를 시도하지만 고양이는 이를 귀찮아한다는 것(?). 베리는 손으로 밀어내고, 제리는 사납게 야옹거린다. 강아지들도 사나운 제리보단 착한 베리를 더 못살게 군다. 너무 귀엽다.

그래도 제리가 옷방에 갇혀 버리기라도 하면, 진쓰는 짖어대면서 나를 옷방 쪽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진쓰는 베리가 자기 집에서 자고 있으면 문 앞에 앉아 기다리다가 지치면 짖기 시작한다. 이렇게 개와 고양이도 함께 지내면 가족이라는 연대감이 생기는 모양이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에 우리 부모님은 처음에는 반대하셨다. 그러더니 지금은 업고 다니신다. 엄마는 옴쓰를 잃어버렸던 날, 아이처럼 서럽게 우시기도 했다. 그리고 당신도 이렇게 변한 것에 놀라워하신다. 애완동물들은 눈짓과 몸짓으로 주인에게 표현을 한다. 아빠가 앉으라고 하면 앉고, 왼손·오른손 분별까지 하는 진쓰가 이제 사람이 되어 간다.

내가 속상한 일이 있어 거실에서 엎드려 울기라도 하면 모두 나를 둘러싸고 빤히 쳐다본다. 그럴 때면 울다가도 피식~ 웃음이 난다. 베리는 내가 외출이라도 하려고 하면 옷 위에 누워 버리고, 제리는 신발을 품고 있기까지 한다. 하는 짓을 보면 안 예뻐할 수가 없다. 고양이는 부르면 오지 않아서 싫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 베리·제리는 부르면 온다. 애완동물도 주인 성격을 닮는다는 게 사실일까? 동물 키우는 재미가 이렇게 흥미로운데 자식 키우는 재미는 더하겠지?

그런데 개그맨 백보람은 개가 싫단다. “그래도 개는 개여~~” 하시는 할머니들도 의외로 많다. 털이 날려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도 있다. 이 얘기 하다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네. 예전에 프랑스에 갔을 때, 길에서 강아지가 너무 예뻐 만져 보려고 다가가는데 주인이 개도 잡아먹는 한국인은 만지지 말라며 면박을 준 적이 있다. 참 민망하고 속상했다. 개인차는 있지만 한국인들이 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쨌든 요지는 이거다. 애완동물은 말은 하지 못해도 의사소통은 충분히 되고, 가족같이 느껴진다는 것. 현대인들의 고독은 숙명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사람은 너무 외로우면 안 된다. 사랑하는 마음이 오그라들면 나도 행복해질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이란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만 그 물길이 말라붙지 않는다.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작은 동물과 작은 식물이라도 사랑해 보세요. 세상이 금세 아름다워 보일 겁니다.

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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