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초등교장 정지선옹,등교길 어린이 교통안전 파수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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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아이들의 안전도 지키고 내 건강도 지킬 수 있어 일석이조 (一石二鳥) 입니다. " 올해 81세의 전직 초등교장인 정지선 (鄭之璇.강릉시용강동) 옹은 16년째 등교길 어린들의 교통안전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해오고 있다.

鄭옹은 어린이들이 등교하는 날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오전7시45분~8시45분까지 1시간동안 자택에서 3백여m쯤 떨어진 용강동 천주교회앞 횡단보도에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손잡기를 쑥스러워 하던 초등학교 새내기들도 금세 鄭옹을 보면 다정스럽게 "교통할아버지" 라고 부르며 덥썩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널 정도로 친근해졌다.

이곳을 지나는 시내버스와 택시, 자가용들도 鄭옹의 수신호에 따라 움직이며 해가 거듭될수록 간단한 목례나 거수경례를 하는 운전자들도 늘어만 간다.

鄭옹이 등교길 어린이 교통파수꾼 역할을 시작한 것은 동해시 동호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3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한 직후인 지난 82년 3월부터. "내게 평생의 업 (業) 을 만들어준 아이들에게 보답할 길이 없을까 하고 궁리한 끝에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등교길 교통정리를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 1시간동안의 교통정리를 마친 鄭옹은 또다른 일터로 출근한다.

지난 83년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서부시장안 3층짜리 건물의 2층에 문을 열고 있는 어린이 무료도서관 '보람의 집' 이 바로 그 곳. 마땅한 놀이공간없이 시장골목을 뛰어다니는 시장상인 자녀들의 쉼터를 마련해주기 위해 문을 연 이곳은 현재 미취학아동에서부터 초.중.고학생들을 위한 각종 도서 4천여권과 윷, 한글 쪽 맞추기등 각종 놀이기구와 50여명이 앉을 수있는 책걸상을 갖추고 15년째 방과후 어린이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열린 학교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 마련된 도서와 놀이기구는 鄭옹이 그동안 치러온 1천2백여건의 주례사례비와 각종 시상금, 독지가의 기증등으로 마련됐다.

鄭옹은 이곳에서 오전내내 아이들이 읽다 내팽개친 각종 도서정리는 물론, 실내청소등 궂은 일을 하며 방과후 이곳을 찾은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러다 보면 어느새 날이 저물어 지나가 현역 교사시절보다 오히려 더 바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鄭옹의 설명이다.

처음 교통정리를 시작할 때 코흘리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어느덧 성인이 돼 자신을 보고 "할아버지 아직도 교통정리를 하시느냐" 며 손을 덥썩 잡아줄 때 보람을 느낀다는 鄭옹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겠다" 며 환하게 웃었다.

강릉 = 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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