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 경영 컨설팅에서 영업까지 장부를 넘어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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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회계법인의 김혜일 회계사는 일주일에 한두 번 부산 신세계센텀시티 내 화장품 매장 스킨랩플러스에 ‘출근’한다. 그는 화장품을 직접 팔기도 하면서 시장의 반응을 파악해 영업 기획에 반영한다. 스킨랩플러스는 미국에서 출발한 화장품 편집매장으로, 국내에선 한스킨화장품이 도입해 운영한다. 김 회계사를 비롯해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10여 명은 올해 초 한스킨의 기획·인사·영업 업무를 맡았다. 한스킨 관계자는 “회사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업무체계를 제대로 갖출 겨를이 없어 삼일회계에 경영 컨설팅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서울 역삼동 교정전문 치과 ‘스타28’에서 삼일회계법인 소속 김동명 회계사(右)가 주보훈 원장을 상대로 경영 컨설팅을 하고 있다. [오상민 기자]


#서울 역삼동에 자리 잡은 교정전문 치과병원 스타28치과의 주보훈 원장은 지난해 삼일회계법인의 유상수 상무와 함께 1박2일 세미나를 하면서 병원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안을 연구했다. 스타28치과는 지난해 첨단 투명 교정장치를 미국에서 도입한 지 1년도 안 돼 1500명의 고객을 모았다. 주 원장은 “기업형 병원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삼일회계법인의 컨설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는 특별한 팀이 있다. 정식 팀명은 ‘딜(DEAL)’이지만, 중소·중견기업팀 혹은 벤처팀으로 불린다. 위의 두 사례처럼 중소·중견기업에 특화된 컨설팅이 이들의 업무다. 국내 회계법인을 통틀어서도 별난 조직이다. 이 때문에 삼일회계법인의 ‘별동대’로 불린다.

이 팀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 출범했다. 팀의 창립 멤버인 유상수 상무는 “경영이 어려운 기업을 컨설팅하고 인수합병(M&A) 업무를 조언해 주기 위해 발족했다”고 말했다. 중소·중견기업을 고객으로 잡은 것에 대해 유 상무는 “규모가 작을수록 회계감사 외에 경영자문을 절실하게 원해서”라고 설명했다. 팀원 대부분은 책상머리에 붙어 있지 않고 경영 현장에서 뛴다. 회계감사 대 컨설팅 업무 비중은 1대9다. 회계사 60명으로 이뤄진 이 팀은 평균 연령 32세로 삼일회계법인 부서 중 젊은 축에 속한다.

발족 당시 서너 곳에 불과했던 고객사는 이제 200곳이 넘게 됐다. 이 팀의 연간 매출은 100억여원으로 ‘사’자 붙은 60명의 실적으로는 적게 볼 수도 있는 규모. ‘고객과 함께 성장한다’는 팀의 운영방침에 따라 당장의 수익보다는 투자 개념으로 서비스를 하기 때문이다. 고객사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땐 컨설팅 보수로 현금 대신 주식이나 건물 같은 현물을 받기도 한다. 팀에서는 그렇게 보유하게 된 빌딩을 관리하면서 가치를 높일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적절한 사업체가 있으면 직접 경영에 참여하기도 한다. 지난해엔 헬스클럽과 철갑상어 양식장에 도전했다.

유 상무는 “적극적인 팀 문화가 회계사에게도 매력적으로 여겨지면서 우리 팀에 근무하겠다는 자원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류승우 부대표는 “딜 팀이 회사의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삼일회계법인은 다음 달 팀을 통폐합하지만 딜 팀은 그대로 가져갈 예정이다.

임성은 이코노미스트 기자 , 사진=오상민 기자

※상세한 내용은 15일 발매된 중앙일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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