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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아시아] 중국-일본 '바다 노다지' 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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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 지난달 23일 중국의 춘샤오 가스전을 둘러보기 위해 해상보안청 항공기를 타고 공중시찰에 나선 나카가와 쇼이치 일본 경제산업상 일행이 촬영한 현장 사진. 왼쪽 앞부분이 천연가스 채굴을 위해 새로 건설한 플랫폼이다. [지지통신 제공]

"큰일이군. 이렇게 가깝다니. 춘샤오(春曉)가스전에서 빨대로 빨면 우리 가스가 저쪽으로 다 흘러가겠구먼."

지난달 23일 동중국해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공중시찰하던 일본의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경제산업상 일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본이 주장하는 EEZ에서 불과 4km 떨어진 이곳 해역에선 중국의 가스전 개발이 한창이다. 플랫폼과 대형 크레인 주변을 화물선들이 바쁘게 오간다. 이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나카가와 경제산업상은 하네다(羽田) 기지에 내리자 단호하게 지시를 내렸다.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하시오."

2주 후인 지난 7일. 일본은 중국이 개발 중인 가스전 가까이에 '3차원 물리 탐사선'을 파견, 해저 자원 조사에 나섰다. 3개월 동안 30억엔(약 300억원)을 들이는 프로젝트다. 일본 측 EEZ선에서 남북으로 200여km, 동쪽으로 30km 폭에 걸쳐 실시하는 대규모 지질조사다. 중국이 개발 중인 가스전 부근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됐는지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가스를 뒷짐 지고 중국에 뺏기지는 않겠다'는 각오다.

중국도 가만있지 않았다. 9일 2000t급 선박 네 척을 동원, 일본 탐사선의 진로를 막았다. 일본이 경고했지만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 탐사선이 우회했다. 자칫 충돌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중.일의 바다자원 쟁탈전=동중국해에서 중국의 가스전 개발은 1999년 생산을 시작한 핑후(平湖)가스전이 처음이다. 일본이 주장하는 EEZ에서 50km 떨어진 곳이다. 이후 한동안 개발이 뜸했다가 최근 중국이 가스전을 잇따라 개발하자 일본이 바짝 긴장했다. 일본 EEZ에서 불과 4km 떨어진 춘샤오 가스전, 9km 떨어진 톈와이톈(天外天)가스전 등이다. 중국은 지난해 8월 미국과 영국의 메이저 석유개발 회사들과 가스 판매 계약까지 한 상태다.

일본은 그동안 중국에 가스전의 광구(鑛區).광상(鑛床)과 관련된 구체적 정보 제공을 거듭 요청했다. 가스전 자체야 중국 해역 안에 위치하지만 매장 구조가 EEZ를 끼고 양측 해역에 걸쳐 있을 경우 바다 밑에서 일본 측의 해저자원이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보 제공을 냉담하게 거절했다. 사기업의 사업 내역을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일본이 중국 측 가스전 개발에 적극 대응키로 결정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중동 정세의 불안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가스전이 일본 측 해역에 퍼져 있는 게 확인될 경우 중국에 자원배분을 요구할 방침이다. 그러나 일본이 정한 EEZ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분쟁 원인=중.일 양국이 주장하는 EEZ의 설정 기준이 다른 게 문제다. 일본은 양국의 해안선으로부터 따져 중간선을 경계선으로 간주한다. 반면 중국은 대륙붕이 끝나는 지점을 경계선으로 따진다. 그러니 EEZ가 한참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엔해양법 조약이 양측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개최하는 양국 협의에서 주장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중국은 양보할 입장이 아니다. 국내 에너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에너지 문제는 현 중국의 국가적 과제다. 이미 2002년 석유 소비량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부상했다. 원유와 천연가스는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뀐 지 11년이나 됐다. 13억 인구를 이끌고 매년 9%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선 바다 속까지 다 뒤져 해저자원을 찾아내야 할 형편이다.

지난달엔 원자바오(溫家寶)총리가 "천연가스와 석유의 탐사.개발을 더욱 강화하라"는 엄명까지 내렸다. 일본 교린(杏林)대학의 히라마쓰 시게오(平松茂雄)교수가 "일본이 중국에 대항해 해저자원 탐사를 시작했지만 중국이 흔들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예상 매장량은=춘샤오.톈와이톈 등 4개의 가스전으로 이뤄지는 '춘샤오 가스전군(群)'은 내년부터 생산을 시작, 2007년에는 연간 25억㎥(원유로 환산하면 약 250만㎘)를 뽑아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석유천연가스 및 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의 분석이다. 이는 일본 내 630만가구에 가스를 공급하는 오사카(大阪) 가스의 연간 가스 판매량에 해당한다. 또 최신 화력발전소 두 곳의 1년간 연료와 맞먹는다. 중국은 앞으로 최소한 13년간은 이 정도 규모의 가스를 매년 생산할 계획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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