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 휩쓰는 신세대 ‘초식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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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를 휩쓰는 ‘초식남’(草食男)을 아시는지. 2006년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가 만들어낸 신조어 ‘초식계 남자’(소쇼쿠 단시. 草食系 男子)의 약칭으로 화장을 하는 등 외모에 신경을 쓰지만 직장을 구하거나 결혼해서 애 낳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남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데이트를 하다가 서로 뜻이 맞으면 잠자리를 같이 하고 그런 다음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고 사는 등등의 ‘통과의례’엔 별 관심이 없다.

초식남은 마치 풀만 뜯어 먹고 사는 사슴의 이미지처럼 여성화된 남성을 말한다. 약육강식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전통적인 남성상(육식남)과는 다르다. 립스틱에 귀걸이 하는 것은 보통이고 브래지어까지 착용하고 다닌다. 매니큐어, 화장품, 액세서리는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식남은 집에서 좌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고 여자와 밤새 같이 있어도 손 한번 잡지 않는다. 돈을 들여서 매춘 업소를 찾지도 않는다. 집에서도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오락거리는 얼마든지 많다. 이들은 주로 부모와 함께 산다. 외출할 때는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온몸에 향수 냄새가 진동한다.

일본의 한 패션잡지가 ‘초식남 유형 분석’을 내놓으면서 일본에서 ‘초식남’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은 일본에선 10년 만에 처음으로 콘돔 소비량이 줄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일본을 바꾸는 여성 같은 초식 남성』이라는 책을 펴낸 홍보회사 인피니티의 우시쿠보 메구미 사장에 따르면, 일본의 20대와 30대 초반 남성 가운데 3분의 2가 초식남이다. 초식남은 결혼을 해도, 남자만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사(家事)노동도 분담한다. 초식남은 주로 일본에서 거품 경제가 한참일 때인 1980년대에 태어나 자란 세대다.

영국 인디펜던트 지 13일자는 일본에서 XX세대가 등장했다며 일본에서는 이들을 초식남(herbivore)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초식남의 발생 배경을 일본의 경제 성장 및 퇴락에서 찾았다. 일본의 전통적인 남성상 하면 사무라이와 일 밖에 모르는 월급쟁이 아버지가 떠오른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주역들이다. 하지만 일본의 신세대들은 아버지 세대가 그토록 열심히 일했으나,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실망하게 됐다는 것이다.

200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상대적 빈곤율은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심각한 수준이다. ‘주간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35세 중 80% 이상이 ‘가난’의 기준으로 보는 연봉 200만엔 수준을 받는다. 일본 노동자의 3분의 1이 파트 타임이거나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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