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도 핵실험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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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도의 핵실험이 세계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74년 핵실험 이후 '핵무장 포기, 핵선택권 보유' 라는 독특한 입장을 지키면서 공개 핵보유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인도가 5월11일과 13일에 걸쳐 다섯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다.

우려되는 파장들을 감안할 때 세계언론이 '핵종말을 재촉하는 도발' 로 비난함은 당연하나, 인도의 핵정책으로부터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우려되는 파장으로는 우선 핵확산금지조약 (NPT) 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CTBT) 의 약화를 들 수 있다.

NPT는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등 5대 핵국 이외엔 핵보유를 금지해 핵의 수평적 확산을 방지함을 골자로 하지만, 5대국에만 핵독점을 허용하는 불평등 때문에 비핵국들의 불만을 사왔다.

95년 NPT가 25년의 시효를 다했을 때 핵국들은 "96년까지 CTBT를 성사시켜 핵실험만이라도 폐지하겠다" 는 약속으로 NPT를 연장할 수 있었다.

때문에 "핵국들의 핵무기도 철폐돼야 한다" 는 일관된 주장으로 NPT와 CTBT를 거부해 온 인도의 핵실험이 이스라엘이나 북한같은 '문턱국가' 들을 자극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그럴 경우 NPT는 물론 막 태어나 발효를 기다리는 CTBT는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서남아시아의 핵경쟁도 우려된다.

독립초기부터 자존심을 내세우며 핵능력 배양에 착수했던 네루 총리가 '인도핵의 아버지' 라면 65년 "풀뿌리를 먹더라도 핵무기를 만들겠다" 는 말을 남긴 부토 총리는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 였다.

세차례에 걸친 인도와의 전쟁에서 수모를 당했던 파키스탄이 인도의 핵실험을 민감하게 받아들임은 당연지사며, 불원간 파키스탄 사막에서 또 한번의 핵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새로운 핵경쟁이 서남아시아는 물론 중국.인도 관계를 뜨겁게 달굴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인도의 핵실험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 더해 우리의 대북 핵정책에서 최악을 대비하는 교훈들을 찾아야 한다.

인도 핵정책의 첫번째 특징은 최소한의 국익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인도는 NPT를 '핵제국주의적 발상' 으로 비난하면서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핵선택권을 고수했다.

여기에 비해 한국의 처지는 한심스럽다.

한국이 NPT에 가입해 핵무기를 포기한 것은 '불가피한 정답' 이었지만, 91년 비핵선언으로 농축과 재처리 능력의 보유마저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민감시설들을 일정기간 운용하거나 일부러라도 핵의혹을 축적해야만 북한이 핵위협을 가할 때 "우리도 대응수단이 있다" 며 되받아칠 수 있는 법이다.

자고로 불임수술을 받은 여성이 "나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고 외쳐봤자 믿을 사람이 없다.

둘째, 인도는 약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제3세계 지도국으로 부상하는 외교실리를 챙긴 경우며, 핵무기와 잠재력을 몽땅 포기하면서도 외교실리를 챙기지 못한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북한이 95년 NPT 연장을 계기로 엄청난 양보를 챙긴 데 비해 한국은 초장부터 'NPT무기한 연장 찬성' 이라는 백지수표를 써주면서 경수로 경비나 떠맡고 있다.

셋째, 은근과 끈기의 인도 핵정책은 결국 챙길 것은 모두 챙기는 결과를 낳았다.

인도가 국제제재를 받은 적은 없으며, 그렇다고 인도가 핵기술이나 핵무기를 안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는 북한도 비슷하다.

94년 핵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안 가진 것으로 볼 증거는 없으며, 그러면서도 50억달러짜리 경수로를 챙기고 있다.

반면 우리의 핵정책은 아직도 "북한에는 핵무기가 없다" "시간이 되면 경수로 완공식이 거행되고 북한이 남한에 감사할 것" 등의 망상속에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서방언론들이 분석하듯 인도의 핵실험은 '집권한 인도인민당 (BJP) 의 대중몰이용 덜컥수' 가 아니다.

독립이래 자존심을 지켜 온 인도인들이 20년간의 장고를 끝내고 내놓은 회심의 한 수다.

김태우 핵전문가.政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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