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 일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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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2년 장기독재의 권좌에서 물러난 수하르토는 독재자들이 흔히 걷는 길을 걸어온 전형적인 개발독재자다. 수하르토는 지난 21년 6월8일 수도 자카르타로부터 4백50㎞ 떨어진 족자카르타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에서 중학교와 이슬람계 학교를 졸업한 뒤 40년 당시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네덜란드의 식민지 군대 하사관으로 군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인도네시아가 독립을 맞이한 45년 그는 인도네시아 국군의 전신인 인민보안대의 부대장으로 변신을 시도, 당시까지 인도네시아 서부 이리안주를 점유하고 있던 네덜란드와의 전쟁에 참여했다.

56년 수카르노 대통령에 의해 이리안을 되찾기 위한 부대가 창설되면서 소장이던 그는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수하르토는 1년여 기간에 걸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 이리안주에서 네덜란드군을 몰아냄으로써 당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장교로 떠올랐다.

65년 육군사령관이던 수하르토는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시도하자 이를 진압한 뒤 이듬해 병석에 누워있던 수카르노 대통령으로부터 이른바 '슈퍼서말 (SUPERSEMAR)' 이라는 권력 이양각서를 받아내 인도네시아 권력 정상에 올랐다.68년 대통령에 취임한 수하르토는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빈궁한 농업국가인 인도네시아에 개발붐을 일으켰다.

그는 69년부터 제1차 25년 장기 경제개발계획과 5차에 달하는 단기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다. 이 결과 인도네시아는 연평균 6%대의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 80년대 후반에는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했다.

또 71년부터 식량증산 계획을 추진, 84년에는 당시 세계적인 식량 수입국이었던 인도네시아를 완전한 식량자급 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독재자 수하르토는 건전 야당세력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국내외의 비난에 직면해 왔다.

또 경제개발에 따른 성과도 관료들의 부패와 일부 재벌기업의 독점, 수하르토 일가의 축재 등으로 빛이 바랬다. 그의 3남3녀는 대기업을 직접 운영하거나 풍부한 천연자원을 독점적으로 운영해 인도네시아 국부 (國富) 를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특히 지난해 가을부터 몰아닥친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는 인도네시아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를 어렵게 함으로써 그를 권좌에서 밀어내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유광종 기자〈kj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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