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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특성화가 살 길이다] 을지대 박준영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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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년 연속 의사국가고시, 10년 연속 간호사 시험에 100% 합격한 국내 유일의 보건·의료 특성화 대학. 을지대가 내건 슬로건이다. 이 대학의 전공은 독특하다. 의예과를 중심으로 응급구조학과와 장례지도학과 등 27개 학과와 전공이 모두 의료 분야와 연관돼 있다. 박준영(51·사진) 총장은 “인류의 건강한 삶의 질을 책임지는 보건·의료가 21세기 최대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며 “일등이 아닌 일류 인재를 키우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 총장을 12일 서울 노원구 을지병원에서 인터뷰했다.


만난 사람=양영유 교육데스크

-캠퍼스가 대전과 성남 두 곳이다.

“2006년 말 대전 을지의과대와 전문대인 성남 서울보건대가 통합해 캠퍼스가 두 개다. 대전시 중구 목동에 있는 대전캠퍼스가 본교다. 의예과·간호학과·의료경영학과·임상병리학과 등 4개 학과와 대학원에서 1000명이 공부한다. 신입생은 간호학과만 70명을 뽑고, 나머지 세 개 학과는 40명씩이다. 경기도 수정구의 성남캠퍼스는 학생 수가 4300명이다. 67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2년제 보건의료 전문대인 서울보건대가 90년 이전한 것이다. 피부관리학과·여가디자인학과 등 특수 전공은 성남에 다 있다.”

-의대·간호대 졸업생이 매년 국가고시에 전원 합격하는 것은 기록인 것 같다.

“올해도 의사고시에 51명 전원이 붙었다. 전체 41개 의대 중 100% 합격은 네 곳뿐이다. 서울대도 90%가 안 된다. 똑똑하다는 것만 믿고 학교에서 신경을 안 쓴다. 전국 의대의 합격률은 85~90% 수준이다. 간호사도 올해 65명이 다 시험을 통과했다.”

-합격률을 높이려고 시험 준비만 시키는 게 아닌가.

“의사면허증이 없으면 간호사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간호사 시험에 떨어지면 간호조무사도 할 수 없다. 시험에 떨어지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러니 다 붙어야 한다. 철저히 현장 위주의 실무교육과 일대일 교육을 한다. 의과대와 간호대는 전임교원 확보율이 370%다. 학생보다 교수가 더 많아 학생 한 명당 교수 두 명을 배정해 가르친다. ”

-자격증을 딴다고 실력이 검증된 것은 아니다. 진짜 실력은 어떤가.

“학교에는 임상실습 환경이 잘 마련돼 있다. 무조건 달달 외워 시험만 붙는 것은 아니다. 실무에 능한 게 실력 아닌가. 노벨 의학상을 타는 학생을 키우겠다는 게 아니고 국민 보건을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1차 의료인을 양성하는 게 목표다. 좋은 연구를 하다 보면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것이다. 의사고시도 실기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

-장례지도학과와 중독재활복지학과를 비롯한 특이 전공이 많다.

“맞춤형 실무 의료인으로 승부를 건다. 장례지도학과는 ‘장례가 인간의 마지막 보건’이라는 생각으로 전문대 과정으로 내가 만들었다. 지금은 물론 4년제다. 40명을 뽑는데 중간에 절대 그만두지 않는다. 여학생도 많다. 전국 영안실에는 우리 학교 출신이 깔려 있다. 3학년 때 취직해 수업이 안 될 정도다. 단순히 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 사람을 예쁘게 화장하고, 상처를 복원시켜 주는 예술사 역할을 한다. 중독재활복지학과는 술·약물뿐만 아니라 인터넷·도박·섹스 중독까지 모든 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 전문가를 양성한다.”

- 전공을 보건·의료에 접목한 이유는.

“컴퓨터를 전공했어도 의료전산은 잘 모른다. 의료전산학과를 통해 병원이든, 보건소든 어디서나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키우고 있다. 여가디자인과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엔터테인먼트 산업·관광·레저 스포츠·치료 레크리에이션 분야의 통합적인 지식과 실무능력을 겸비한 ‘여가디자이너’를 육성한다. 홍보디자인과는 제약회사 제품 디자인, 유아교육은 아이들 건강 관리로 특화했다.”

-신입생은 어떻게 뽑나. 다른 대학과 차별화된 것이 있는지….

“인성을 가장 중요시한다. 사실 대학에서 인성교육을 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면접점수 비중을 30%로 높였다. 성적에 맞춰 입학하기보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오는 학생이 많다. 입학사정관제는 신중히 검토한 뒤 도입여부를 결정하겠다.”

-얼마 전 ‘2020’ 비전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헬스테크노벨트를 만들겠다고 했다.

“의료분야는 의료공학·의료기계·제약 분야가 함께 발전해야 성장할 수 있다. 연구소와 제품개발 회사, 대학의 이론을 합쳐 거점화하는 것이 테크노벨트다. 대전과 충남 오송단지에 들어선 의료·보건업체와 생명과학 공동 연구를 확대할 것이다. 성남캠퍼스는 주로 지역 중소기업과 손을 잡고 있다.”

-그래서 종합대 인수를 추진하는 것인가. 돈도 많이 들고 특성화와는 정반대 길이다.

“(주먹을 불끈 쥐며) 재정은 문제없다. 21세기는 학문융합 시대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사회과학과 의학이 교류해야 한다. 의료 전문 법조인, 의료공학을 전공하는 공학도, 의료전문 언론인이 될 수 있는 길을 대학이 열어 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종합대를 인수하면 을지대의 장점인 보건·의료 특성화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무모한 몸짓 불리기가 아니라 고급의료 인력을 양성하고 관련 산업에 경쟁력을 불어 넣으려고 추진하는 것이다.”

-협상이 구체화된 것이 있나.

“물밑 교섭 중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백화점식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두 대학이 윈-윈 하자는 것이다. 의학에 공학을 결합하면 놀랄 만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지금 상대 대학명을 말하기는 곤란하다.”

- 운영하는 병원이 몇 개인가.

“서울 노원구의 을지병원과 충남 금산의 금산을지병원, 대전 둔산의 을지대학병원이 있다. 다음 달에는 서울 강남에 청소년 클리닉 전문 병원을 개원한다.”

-약대 설립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약대가 필요한가.

“우리나라는 병원 약사보다 개업 약사가 많아 병원은 약사가 부족하다. 특히 대전·충남 지역은 인구 8만3000명당 약사가 1명밖에 없다. 약대 설립은 지역 현안사업이다. 3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 신약 개발 같은 의생명공학 분야 인재를 배출하려면 꼭 필요하다.”

-학생들의 졸업조건이 특이하다.

“전공 불문하고 모든 학생은 졸업하려면 심폐소생술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또 국내외 사회봉사를 2주 이상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학교 교육이념이 ‘가슴이 따뜻한 의료인, 성숙한 사회인의 양성’이다. 환자를 진심으로 아끼고 환자 입장에서 치료하는 가슴이 따뜻한 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교수 평가는 어떻게 하나. 전공이 특수해 연구 실적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셀·사이언스·네이처 등 세계 3대 권위지에 논문을 발표하면 1억5000만원의 인센티브를 준다. 테뉴어 심사 때까지는 과학인용색인(SIC)급 논문을 발표해야 한다. 조교수라도 능력이 있으면 정년을 보장받고 승진도 일찍 할 수 있다.”

-전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 김일 선수와의 인연이 화제였다.

"(웃으며) 1994년 지인한테 혼자 투병 중인 김일 선생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모셔 왔다. 2006년 돌아가실 때까지 을지병원에서 기거하셨다.”

정리=임현욱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박준영 을지대 총장=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용산고·한양대 의과대를 거쳐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學)에서 산부인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56년 서울 을지로에 개설한 산부인과 병원을 모태로 한 을지재단의 설립자 박영하 박사의 차남이다. 93년 부친의 뒤를 이어 학교법인 을지학원과 서울 을지병원 이사장을 맡았다. 2006년 대전 을지의과대와 전문대인 서울보건대를 4년제 대학인 을지대로 통합하고 총장에 취임했다. 대전·성남 을지대 캠퍼스와 서울 노원구 을지병원 등을 오가며 일을 한다. 일에 대한 집념이 강해 추진력이 좋고, 성격이 화통하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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