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부문화로 허례허식 풍조 타파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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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요즘 유행하는 호텔 결혼식과 돌잔치엔 수천만원이 우습게 들어간다. 인사철마다 ‘축 승진’ ‘축 영전’ 리본을 달고 오가는 난초 화분은 개당 5만~10만원이나 되지만 얼마 못 가 시들어 버려지기 일쑤다. 이렇듯 우리네 관혼상제와 기념일엔 체면치레와 인사치레만 난무할 뿐 진심 어린 축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이런 점에서 허례허식 풍조를 깨보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스럽다. 서울시가 이달 초 시작한 ‘그린 기프트’ 캠페인도 그중 하나다. 좋은 일을 맞은 지인에게 값비싼 화분이나 선물을 주는 대신 그 사람 이름으로 기부금을 낸 뒤 영수증과 축하카드를 보내는 것이다.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으니 다른 어떤 축하 선물보다 여운이 오래갈 터다. 공공기관 중엔 이번에 서울시가 처음 도입했지만, 민간에선 제일기획이 몇 년 전 유사한 축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회사의 김낙회 사장이 이웅열 코오롱 회장 등 축하할 일이 생긴 이들에게 그들 명의로 된 기부 영수증과 카드를 선물한 것이다.

결혼이나 돌 등을 치르며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연예인 션-정혜영씨 부부가 대표적이다. 이 부부는 두 자녀의 돌잔치 비용을 모두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기탁해 여러 불우한 아이들이 인공 와우 수술 등을 받게 도왔다. 이후에도 매일 1만원씩 모아 자녀의 생일마다 또 다른 어린이 환자의 수술비를 댄다고 한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경사 때 기부 선물을 하는 일이야말로 소외계층의 슬픔을 줄이고, 주는 이의 기쁨을 배가시키니 일석이조요,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아름답고 뜻 깊은 새 기부문화가 더욱 확산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