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어느 구청장후보의 돈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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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 구청장의 재선 도전에 나선 Q후보. 6.4지방선거 후보등록을 하루 앞둔 18일 그는 95년 선거비지출 명세서를 펼쳐 놓고 고민에 빠졌다. 당시 유급 사무원 비용 1천7백만원. 짜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돈을 아꼈다.

선거의 절약 실험을 한다는 각오로 총 4천만원만 썼다. 법정한도액인 5천5백만원에 크게 못미치는 액수다.

그리고 당당히 당선된 것이다. 이번에도 그의 큰 걱정은 자금조달이다.

현직 구청장의 프리미엄도 있고 지명도도 높지만 돈 생각만 하면 심란하다. 우선 법정한도액이 8천8백만원으로 늘어났다.

선관위에서 선거비를 현실화한다는 명목으로 한도액을 증액한 것이지만 Q씨에겐 부담이다. 돈을 요구하는 '검은 손짓' 은 지난 선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95년 선거 때는 자원봉사자중 20여명이 선거일이 닥치자 매일 4만~5만원씩을 요구했다.

이를 만족시켜주지 못하자 "내가 남의 돈까지 빌려가며 수백만원을 썼으니 갚아줘야 하지 않느냐" 며 떼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에도 향우회.계모임을 한다면서 "그냥 얼굴이나 보이고 가시라" 며 접대를 요구하는 전화가 시작됐다.

Q씨는 이번에도 법정 선거비용보다 적은 돈으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고, 빚을 얻어 돈을 풀 생각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후보다.

지난 선거 때는 소문난 재력가인 Z후보의 돈 씀씀이에 줄곧 긴장했다. Z후보가 온천지 선심관광을 시켜준다는 등 수억원을 쓴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측근들은 "우리도 가만 있으면 안된다" 고 흥분했다.

Q씨는 측근들을 무마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측근들을 다독거리자 현장 선거운동원들이 "당선되려고 하는 선거운동 맞느냐" 며 비아냥대는 소리까지 들렸다.

이번에도 돈 많은 후보가 경쟁자로 나서고 있다.지금 Q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선거비용을 확보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처럼 후원회를 열 수도 없는 처지이기에 친지.친구들로부터 십시일반 (十匙一飯) 으로 돈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IMF바람에 손벌리기도 미안해 일단 그동안 저축한 예금을 모두 꺼내 사용중이다.

돈 없는 후보에게 유용한 홍보물이던 명함형 인쇄물과 현수막이 없어져 몸은 더 바빠지게 생겼다.Q씨는 "IMF극복을 위해선 돈 선거를 추방해야 한다" 고 참모들의 정신무장부터 시킬 작정이다.

Q씨는 돈 안쓰는 선거운동 실험은 유권자의 성숙도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믿고 있다.

남정호 기자 〈nam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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