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과 과학] 돼지 멱따는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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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듣기 싫은 소리의 대명사 '돼지 멱따는 소리' .심한 음치거나 가끔씩 바람 빠지는 목소리를 내는 이라면 한번쯤 이런 '야유' 를 들어 본 경험이 있을 터. 하지만 이 소리도 따지고 보면 세계적 테너인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한창 목청을 돋울 때의 음도 (㎐) 나 강도 (㏈) 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테너의 평균 음도 1백35㎐정도. 하지만 목소리를 뽐내기위해 고음으로 올리면 5백㎐이상을 나타내며 소리의 강도도 약 1백㏈ (1m앞 기준) 정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돼지가 꽥꽥거리며 멱을 따는 소리를 낼 때 주성분이 되는 소리의 음도와 강도가 바로 이 정도. 음의 분석차원에서 보면 둘 사이에 큰 차이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강도와 음도가 유사하더라도 둘의 소리가 천양지차 (天壤之差) 로 들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돼지의 소리의 경우 음정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 가운데 소리가 지나치게 크기만 하다.

이에 반해 테너의 소리는 적당한 주파수로 통일돼 나타나며 강약의 조화가 절묘하게 이뤄진다. 특히 적당한 음도와 강도를 유지하면서 소리의 질이나 유동성이 좋으면 더욱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최근 영국의 한 과학지는 몸이 뚱뚱할수록 이런 조건을 잘 맞춰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려 관심을 끌기도 했다. 성악가중 날씬하거나 마른 이보다 다소 체격이 있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을 성 싶다.

그냥 듣기 싫기만 한 돼지 멱따는 소리에도 에너지가 있다. 한마리가 소리를 낼 때 0.01W (1백㏈.1m앞 기준) 정도가 방출되는 것. 따라서 멱따는 돼지 6만여마리를 모으면 1ℓ의 물도 끓일 수 있다고 한다.

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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