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직 대통령의 금도가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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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말이 많다. 그는 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돌 기념 특별연설에서 "과거 50년 동안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걱정”이라면서 “방관하면 악(惡)의 편”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악이고, 이를 타도하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악의 편이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다. 나라가 내외로부터 큰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이때 전직 대통령이 이런 적절치 못한 언행을 하는지 답답하다.

김 전 대통령의 연설을 듣다 보면 우리가 마치 20여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세상을 민주 대 반민주, 선과 악으로 양분하는 것부터 그렇다. 현직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고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부하는 것은 용서 안 된다”고 역설했다. 더 나아가 “행동하는 양심이 돼서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몰아쳤다. 정부를 타도하자는 선동과 다름없다. 지금이 그럴 때인지 어리둥절해진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정치 원로로서 현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한 것이라고 하기엔 발언내용이 부적절하고 표현도 험악하다.

더구나 그의 연설만 들어서는 무엇을 독재라는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다. 자신이 집권했을 때보다 잘못된 것은 무엇인가. 지금의 정치 상황이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할’ 만큼 엄혹한가. 국정을 운영해 본 전직 대통령이 민주적 절차와 틀을 파괴하고 나라를 혼란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는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문상객의 10분의 1만 ‘전직 대통령을 모욕 주고 이렇게 수사하면 안 된다’고 서명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직 대통령은 죄가 있어도 수사하면 안 된다는 논리로 몰아가는 것은 곤란하다.

전직 대통령이라면 나라가 어렵고 혼란스러울 때 국민화합과 위기극복을 위해 힘을 보태주는 게 당연하다. 더군다나 김 전 대통령은 여야 정권교체의 경험을 갖고 있고, 지금도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분이 아닌가. 현 정부에 대한 전직 대통령의 비판과 조언은 보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의 품위와 금도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