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미국계 은행 선호하는 일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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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도쿄 (東京)에 사는 회사원 고마쓰 히로유키 (小松宏行.26) 는 지난달 자신의 예금계좌를 일본계 T은행에서 미국계 시티은행으로 옮겼다. T은행은 초등학교 이후 20년간 거래해 온 은행.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부친이 50년 넘게 이용해 온 은행이기도 하다.

고마쓰가 은행계좌를 옮긴 것은 부친의 권유 때문이다. 정년퇴직을 4년 앞둔 그의 부친 (56) 은 지난해 금융불안때 혹시나 해서 3천만엔의 잔금이 든 은행계좌를 시티은행으로 옮겼다.

부친은 지난 1월 모친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어디를 가든지 시티은행에서 발급해 준 현금카드로 편리하게 돈을 찾을 수 있었다. 고액예금자인 만큼 해외수수료도 무료였다.

정말 편리하다는 생각에 아들에게 예금계좌를 옮기도록 권유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고마쓰는 자신의 그동안 금융거래 명세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는 회사가 월급 (29만엔.약 3백17만원) 을 통장에 입금해 주면 필요할 때마다 현금카드로 1만~2만엔씩 찾아 썼다. 평일 오전10시부터 오후3시까지 T은행 현금자동지급기 (ATM) 를 이용하면 공짜지만 오후3시가 넘으면 건당 1백엔씩 수수료가 붙는다.

밤에 편의점이나 다른 은행의 ATM을 이용할 경우 수수료는 무려 2백엔. 예금통장을 정리해 보니 지난해 예금잔액 3백20만엔에 대한 이자가 2만8천엔이고 ATM수수료는 1만4천5백엔이었다. 이자의 절반이 수수료로 빠져나간 것이다.

그는 24시간중 일본 어느 은행의 ATM을 이용해도 수수료가 없는 시티은행으로 계좌를 옮겼다. 요즘 일본의 외국계은행은 미리 준비해 놓은 통장이 모자라 찾아오는 고객을 돌려보낼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면 상당수의 일본계 은행들은 정부의 재정자금을 지원받아 가까스로 버티는 형편이다. 고마쓰 부자처럼 피부로 일본계 금융기관의 낙후성을 느낀 예금자들의 대반란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철호〈leechul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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