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경재신부 영전에]나환자의 '별'이 되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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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제 먹구름이 드리우고 비바람이 부는 속에 이런 비보가 날아들다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70성상의 평생을 오로지 주님을 따라 주님의 뜻대로, 28년 동안 한결같이 성라자로마을에서 나환자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신부님이 모든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홀로 가시다니.

저 멀리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나 노기남 (盧基南) 대주교 밑에서 사랑받고 봉사를 배풀던 신부님. 하와이 몰로카이에서 나환자와 함께 평생을 바친 다미안 신부처럼 주님의 명대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던 신부님이 끝내 웃는 낯으로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꾸준함, 그것은 신부님만의 고독한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6.25 당시 우리가 많은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을 본 신부님은 그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키 위해 사방에 보은의 손길을 뻗쳤습니다.

북한의 나환자들, 중국 옌볜 (延邊) 의 조선족, 러시아.몽골.베트남 등지의 나환자들을 위해 그렇게도 애썼던 신부님은 결국 본인이 갈망하던 21일 예술의전당에서의 '해외동포 나환자를 위한 자선음악회' 를 앞두고 훨훨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제가 60년대 워싱턴에서 방송사 특파원 생활을 하며 뵈었던 신부님은 피츠버그의 해외 사목으로 계셨지요. 돈 한푼 한푼을 모아 서울로 보내던 신부님은 결국 어떤 결심을 하셨던가요. 신부님은 편안한 본당 신부직을 거부하고 동성고 선.후배, 동료 등 주변 사람의 만류 속에 나환자들과 함께 일생을 같이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요.

일본의 소노 아야코와 독일 성직자들이 신부님과 함께 소외된 이들을 돕던 일, 수도꼭지에 물도 나오지 않던 옛날 그 시절에 수녀님.봉사원들을 이끌고 오늘의 성라자로마을을 28년 동안 이어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신부님은 떠났지만 그 말씀과 정신은 언제까지나 교인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봉두완〈성라자로마을돕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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