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백경]10.내 마음이 있는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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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5월3일은 부처님 오신날이었다. 이렇게 참으로 좋은 날이면 가보고 싶어지는 마음에 간절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다.

바로 청도 (淸道) 운문사 (雲門寺) 다. 젊은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 운문 승가대학이 있는 사찰이다.

아름다운 운문산 (일명 호거산) 과 맑은 계곡, 깨끗하게 정돈된 가람, 절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이 그렇게 잘 조화를 이룰 수 없다. 더불어 세상의 잡답 (雜沓) 을 떠나 불교의 오의 (奧義)에 파묻혀 몰두 중인 비구니 스님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아름답고 숭고한 그 무엇이 느껴지는 곳이다.

'삼국유사' 를 쓴 일연 (一然) 스님이 주석 (駐錫) 하였던 장소인 이 곳이 지금 비구니 스님들의 공부 절로 바뀐 것을 생각하면 그 옛날 맑은 마음을 아름다운 시에 실어 남긴 한산 (寒山.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 스님의 선시 (禪詩)가 먼저 떠오른다. 내 마음 가을 달 같아서 푸른 연못 맑고 깨끗하게 보인다.

어느 것과도 비교할수 없으니 무슨 말로 표현하리요. 필자는 인연이 있어 5년전에 돌아가신 성철 (性徹.1912~94) 큰스님을 십 몇 년에 걸쳐 사진을 찍을 기회를 가졌었다. 처음 성철 큰스님을 뵐 때 나 역시 고승대덕 (高僧大德) 이란, 세간에 회자되는 말의 무게에 눌려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첫날은 그래서 단 몇 커트만 찍었다. 그리고서 "스님, 오늘은 이만 하겠습니다.

내일 사진이 나오면 보십시오. 만일 마음에 드시지 않으면 제가 부족한 때문이니 저는 그만 두겠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다. 스님이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손을 내저으며 "사람은 한 번 믿는게 어렵지 믿고 나서 무슨 다른 말이 있겠느냐" 고 하셨다. 그리고 "사진은 오늘 찍든 내일 찍든 마음대로 하라" 하셨다.

그렇게 시작된 스님과의 인연은 스님이 이 속세를 떠나 입적할 때까지 계속됐다. 세간에서는 스님을 어려워 했지만 가까이서 본 스님은 그와는 달랐다.

평범한 가운데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셨다. 별 것 아닌 작은 욕심에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은근히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흔들림의 정곡을 찔러 주시길 잘 하셨다.

그것은 속세의 사진작가에 대해서만이 아니었다.초파일이나 절집의 큰 행사날인 결제 (結制).해제일 (解制日) 이면 으레 내리시는 큰스님의 법어는 절집 스님들도 신이 나서 들으려 했다.

"올해는 무슨 말씀을 해주시려나" 하고 였다. 그 만큼 스님의 말씀은 평범하면서도 무게와 깊이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부처님 오실날을 맞아 스님이 남기신 법어를 다시 찾아봤다. 힘든 지금 우리의 처지를 봤으면 '스님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실까' 하는 범인 (凡人) 다운 생각에서였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82년에 남기신 말씀이지만 지금 읽어도 느낌이 새롭다.

갑자기 닥친 경제위기라는 시대의 격랑에 흔들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때가 지금이 아닌가.청도 운문사에 가면 언제나 마주치는 정갈한 분위기는 우리들 '본래의 자기' 가 머물 곳이 마치 그 곳 같아 보인다.

글·사진=주명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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