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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용인으로 수도 옮기고 조선인은 만주로 보내려 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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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일제강점기를 보는 눈은 크게 두 개다.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옛 건설부 공무원과 국토개발연구원장, 경원대 총장을 역임한 김의원(78·사진) 박사는 이와는 색다른 주장을 펴는 인물이다. 그는 “일제가 한반도를 개발한 것은 궁극적으로 조선 사람을 만주로 내쫓고 자기들이 살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일본은 1943년 비밀 국토계획인 ‘중앙계획소안(中央計劃素案)’에서 경성부(서울) 남쪽 교외, 일본 내 오카야마와 후쿠오카 등 세 곳을 대동아권의 수도 이전 후보지로 정했다고 적고 있다. 일본인은 한반도와 만주로, 조선인은 만주로 이주시키는 계획도 세웠다. 김 박사는 “일본 전직 관리 등과의 면담에서 수도 이전 후보지인 경성부 교외가 한국외국어대 용인 캠퍼스가 있는 계곡 일대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8월 말까지 국토개발 60년사를 편찬하기 위해 국토연구원을 찾은 그를 4일 인터뷰했다. 그는 4대 강 개발, 그린벨트 관리 등에 얽힌 비화도 털어놓았다.

-일제가 정말 수도를 서울 부근으로 이전하려고 했나.
“일본에서 국토계획을 하는 사람들이 수도 이전 계획을 담은 중앙계획소안을 만들어 각의에서 결의했다고 증언했다. 그 문건에 후보지 세 곳이 명기돼 있다. 그걸 내가 일본 헌책방에서 발견했다. 바닥에 처박아 둔 책 더미에서 찾았다. 흥분해 주인에게 얼마냐고 했더니 바닥에 쌓아 둔 것은 자기가 쓰레기 취급한 것이니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 한사코 돈을 받지 않으려 해서 자판기에서 담배 세 갑을 뽑아 던져 놓고 책을 가져왔다. 일본 국토 전문가들에게 얘기했더니 각의 결의 후 서류를 없애라고 했던 것인데 어떻게 그게 굴러 굴러 고서점에 갔는지 모르겠다며 놀라더라.”

-일제는 왜 수도를 이전하려고 했는가.
“서울은 당시 일제 지배권의 중앙인 데다 역사적으로 지진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두 후보지는 일본 본토였으나 그들의 마음은 이미 서울 부근으로 정해져 있었다. 비밀 계획을 보면 일본인 800만 명과 조선인 200만 명을 만주로 이주시키고, 일본인 200만 명을 한반도로 이주시킨다는 내용의 인구 배정 계획이 나오는데 계획만 그렇지 실행 단계에서는 일본인을 만주 대신 조선으로 보내고, 훨씬 많은 조선인을 만주로 내보냈을 것이다. 추운 만주나 지진이 빈발하는 일본보다 한반도가 살기 좋은 땅 아닌가. 결국 한반도 개발은 다 자기들이 와서 살기 위해 했던 것이라는 게 내 결론이다. 옛 건설부 도로과장을 지낸 이헌경씨가 광복 직후 도로과 캐비닛에서 용인 일대 측량 도면을 봤다고 했다.”

김 박사는 일제가 수도 이전과 함께 당시 ▶부산~신의주, 서울~투먼(圖們), 대전~삼천포 간 고속도로 건설 ▶경부선·경의선 철도 복선화 ▶일본과 부산 간 해저 터널 건설과 기차 수송 방안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구한 자료가 많은가.
“국토연구원에 내가 구한 자료를 많이 기증했다. 이 중 국가기록원에서 영구히 보존해야 할 자료로 꼽은 게 80여 권에 이른다.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집을 찾아가 그들이 보관하고 있던 자료를 ‘당신한테는 쓸모없으니 달라’고 해서 받아왔다. 철필로 긁어 등사한 뒤 자기들끼리 봤던 문서다. 조선총독부에는 우수 인재가 몰렸다. 2년간 근무하면 1년간 세계일주를 시켜 주는 특전이 있었다고 한다. 기술자들은 한반도를 식민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전공을 살려 보려고 열정에 불타 일했다. 우리도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조선총독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선하천조사서』를 만들었는데 그들이 안 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예산이 없어 못했을지 모른다.”

-일제가 수탈하기 위해 그런 조사를 한 것 아닌가.
“일본이 한반도에 와서 철도·도로·항만을 만들었다. 면마다 학교를 세웠다. 일본인이 우리를 착취해 그걸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과 좀 다르다. 조선총독부 예산을 분석해 보면 조선에서 거둔 세금은 농지세 정도인데 이것으로는 당시 공무원 월급의 10분의 1도 못 줬다. 총독부 관리들이 본국에 가서 로비를 하며 예산을 따왔다. 물론 철도 같은 것은 대륙 진출을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추진 중인 행정도시는 어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행정수도 이전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했던 임시행정수도 건설은 다른 개념이다. ‘임시’자가 붙어 있다. 통일된 뒤 수도를 다시 서울로 옮긴다는 구상이었다. 행정도시를 꼭 만들어야겠다면 그때처럼 ‘임시’라는 단서라도 달았으면 좋겠다. 전후 일본은 수도를 옮기려 했다가 전부 없던 것으로 했다. 우리보다 경험이 없어서 그렇게 했겠나. 공기업들을 여러 군데 흩뿌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일이 되겠는가. 박 전 대통령의 임시행정수도는 전쟁에 대비하려고 추진한 것이다. 그린벨트 역시 그런 측면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그린벨트라는 거 있지’ 하며 지도에 스케치를 해서 주더라. 1주일 작업해 보고했더니 불광동 북쪽 기자촌과 북한산 계곡은 왜 뺐느냐며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다. 나도 고집이 세서 거기를 포함시키지 않고 다시 보고했더니 박 전 대통령은 ‘아니야’ 하고 큰소리를 냈다. 북한과의 전쟁에서 밀렸을 때 계곡에 인민군 2개 사단을 유인해 놓고 북한산에서 (포격을) 때려야 하므로 시가화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작전 개념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기자촌 일대는 현재 은평 뉴타운으로 조성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지금은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있는데.
“그린벨트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관리했다. 박 전 대통령이 그림을 그릴 때는 평면 확산을 막자는 도시정책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운동시설을 만든다거나 하면 좋겠는데 전부 아파트를 짓는다니 섭섭하다. 그린벨트를 철저히 관리한 박 전 대통령의 뜻을 헤아려 줘야 한다. 군부대 초소 신설까지 대통령이 결재했다. 국방부 장관이 여러 차례 군에 맡겨 달라고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군인들이 법이 뭔지 알아’ 하며 건설부를 통하라고 했다. 별을 단 장군들이 건설부 계장 옆에서 하소연하곤 했다. 여러 고위층이 혼났다. 그린벨트에 부모 묘를 썼다가 3일 만에 옮긴 장군도 있었다. 총리까지 지낸 분은 그린벨트 내 모친 묘 옆에 묻히길 원했으나 경기도지사가 삽질을 못 하게 막았다. 곳곳에서 풀어 달라는 요청이 빗발쳐 발인하는 날 새벽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겨우 허용한 예도 있다. 나무도 함부로 베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태릉골프장 옆에 멋있는 나무가 있었는데 없어졌다’며 챙겨 보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 ”

-국토계획 전문가로서 대운하 구상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67년 국토계획과장 때 한 출입기자에게 3대 강, 그러니까 낙동강·한강·금강을 연결해 물을 주고받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1면의 절반을 채우더라. 큰 활자를 보고 덜컥 겁이 났다. 3일 후 청와대에 브리핑을 하러 들어갔는데 떨리더라. 박 전 대통령이 대뜸 ‘3대 강 연결한다며’라고 해서 ‘네, 각하’라고 했더니 ‘좋은 아이디어야. 발전시켜’라고 말해 오히려 놀랐다. 90년대 초반 경원대 대학원장 때 세종대 측에서 3대 강 연결 아이디어 강의를 해 달라고 해서 해 줬다. 그런데 거기서 대운하 구상이 나왔다. 대운하는 거기 아이디어다. 나는 물을 주고받는 체제를 생각한 것이다. 물을 주고받는 것은 토목공학적으로 어렵지 않고 지금도 해야 한다고 본다. 대운하는 좀 다르다. 만든다고 해도 누가 운하로 화물을 수송하겠나.”
(※대운하 구상은 95년 11월 주명건 세종대 이사장이 처음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국토 계획을 맡고 있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회고록을 쓰고 있다. 교수들은 행정 실무를 해 보지 않으니 국토개발이 어찌 이뤄지는지 잘 모른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갯벌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해 매립·간척을 마구 한 것이다. 도움이 될 만한 얘기들을 모아 후배들에게 알리고 싶다.”

김의원은
1931년생. 경북 선산 출신으로 건설부 국토계획과장·국토계획국장·도시국장·국토지리원장을 거쳐 81년 국토개발연구원장에 취임해 학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어 경원대 교수와 총장, 건설부 공무원 모임인 대한건설진흥회 회장을 역임했다. 일본 니혼대 공학박사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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