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IMF시대 제2기 새 의향서에 담긴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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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11월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 정부는 실물경제를 희생하더라도 외환위기를 벗어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이번에 실물경제를 살리는데 주안점을 두기로 합의한 것은 최근 실물경제의 붕괴가 가속화돼 자칫 회생 불가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정부의 위기의식에 IMF도 공감한 결과다.

또 외환쪽에 다소 여유가 생긴 것도 이번 합의를 가능케 했다. 실제로 정부와 IMF는 금융기관 단기외채 2백18억달러의 장기전환과 외국환평형기금채권 40억달러 발행으로 외환위기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판단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윤진식 (尹鎭植) 기획관리실장은 "IMF 프로그램의 제2기를 시작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이번 합의의 핵심은 정부와 IMF가 실물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인위적 고금리정책을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IMF는 그동안 고금리를 유지해야만 외화가 들어온다는 논리를 내세워 금리인하에 난색을 표해왔다. 특히 단기금리를 대표하는 한은 환매조건부채권 (RP) 입찰금리에 개입, 금리인하를 억제해 왔다.

그러다 보니 RP금리와 콜금리 등 단기금리가 연 18~19%대를 유지, 연 17%안팎의 장기금리보다 높은 '단고장저 (短高長低)' 의 기현상이 이어져 왔다.앞으로는 시장 수급에 따라 금리가 결정될 수 있도록 정부에 재량권이 주어지게 됐으며, RP 입찰금리도 한은이 알아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경부 정건용 (鄭健溶) 금융정책국장은 "시장 상황에 따라 RP금리와 콜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떨어질 수 있을 것" 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 금리가 떨어질지는 미지수다.

금융계에서는 대출재원중 콜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콜금리 하락이 곧바로 대출금리 하락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경제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연 17%안팎의 장기금리가 더 떨어지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콜금리를 무조건 25%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식의 지난해 말 합의에 비해선 엄청나게 여건이 개선된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실물경제 회복을 돕는 대신 IMF는 기업.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은 더욱 강화했다.실물경제의 붕괴라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나가되 자칫 분위기가 느슨해져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것 또한 철저히 막겠다는 뜻이다.

우선 공적 (公的) 자금을 기업 구제금융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원칙을 세운 것이 눈에 띈다.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살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산업은행이 기아자동차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하는 식의 개입은 원천적으로 힘들어지게 됐다.

대기업이 기존의 재무구조 개선협정 외에 모든 부채내용.현금 흐름 등을 9월까지 주거래은행에 추가로 제출토록 한 것도 구조조정을 촉진하자는 취지다.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을 높이고, 시가회계기준을 도입하며, 부실채권기준을 강화하는 등 깐깐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부와 IMF가 금리인하에 합의한 이후에도 정작 금융기관은 형편이 더 어려워져 금융경색이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이런 전후 사정을 감안, 정부와 IMF는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1%이상으로 잡았는데 이 경우 실업률은 7%, 실업자수는 1백50만명을 넘게 된다.

결국 제2기 IMF시대의 성공여부는 실업대책을 적절히 세워 노동계를 무마하면서 금융경색을 푸는데 달려있는데,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다.

고현곤 기자

〈hkk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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