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회사에 다니는 宋모 (43.전북전주시덕진구) 씨는 친구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일부러 피하고 있다.
얼마전 둘도 없이 친한 중.고교 동창의 연락을 받고 나간 자리에서 "퇴직금으로 편의점을 하려는데 돈이 모자라서 그러니 5천만원의 은행 빚 보증을 서 달라" 는 부탁을 받았다.
1억원도 안되는 아파트가 전재산인 宋씨는 밤새 고민한 결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보증을 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곤경에 빠진 죽마고우의 청을 눈앞에서 거절할 수 없어 자신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여직원이나 직장동료에게 대신 받게 해 따돌리고 있는 형편이다.
宋씨는 "그 친구가 내 입장을 눈치채고 연락 안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며 "30년 우정이 풍비박산나는 기분" 이라며 씁쓸해 했다.
S은행 전주지점에 근무하는 金모 (29) 씨도 마찬가지. "실직자 친구들이 나를 '최적의 보증인' 으로 점찍어 줄줄이 빚 보증을 요청해오고 있다" 며 "당분간 친구들과 만나지 않기 위해 동창회나 경조사 자리에도 안나갈 생각" 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제한파로 '수십년 우정' 이 금가고 다정했던 친.인척이 '딴 사람' 처럼 갈라서고 있다.
자고 나면 책상이 없어지고 회사가 무너지는 판에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수천만원의 빚 보증을 서줄 수 없어 '도망'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친척이나 퇴직 사우의 보험가입.승용차구입 등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어 고민하는 직장인 또한 적지 않다.
퇴직 사우로부터 술자리에서 보험가입 요청을 받은 李모 (43.회사원.서울은평구불광동) 씨는 임기웅변으로 겨우 '위기' 를 모면했다고 한다.
보험가입 얘기를 꺼내는 순간 소주를 벌꺽 들이키며 "나도 이번에 잘릴 것 같다" 고 엄살을 부려 거절했다.
최근 처가집 식구들과 '남남이 된' 金모 (38.회사원.서울서대문구홍제동) 씨도 같은 경우. "승용차를 팔아야 그만큼 월급을 받을 수 있다.
한대만 팔아달라" 는 자동차 협력업체 간부인 막내 처남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 金씨는 "장모까지 전화로 항의해와 당분간 처가집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것 같다" 고 걱정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록 경제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인간관계만은 끊어지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주위 사람을 대하라고 충고한다.
전북대 김영정 (金永珽.사회학과) 교수는 "계속되는 경제난이 인간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며 "인생을 길게 보고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이해해야 돈독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전주 = 서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