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자수제'에 중국 관리들 덜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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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중국의 지방 관료들이 '청렴[廉政]공시제'란 요술 거울에 떨고 있다. 지방 행정의 각 분야.기관을 책임지는 장(長)에게 자신의 부패상을 스스로 쓰게 한 다음 반(反)부패 기관의 심사를 거쳐 주민 검증 절차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창장(長江) 근처에 있는 장쑤(江蘇)성의 쓰양(泗陽)현에선 요즘 40대의 젊은 관료들이 잇따라 낙마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실시한 '청렴 공시제'의 그물에 걸려서다. 인구 84만명의 쓰양 현은 난징(南京)에서 180㎞ 떨어진 빈농 지역인데 중국에서 처음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주청후(朱成虎.42) 왕지(王集)진 당위 서기는 현(縣)정부의 계획생육국장이란 자리로 영전을 앞두고 있었다. 경력과 평판으로 봐 누구도 탄탄대로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과거에 뇌물을 받은 사실이 있다"는 주민 신고에 걸려 물러나야 했다.

쓰양 현의 기율검사위에선 올해 78개 단위의 책임자급 관료 92명을 이런 방식으로 전면 조사했다. 그 결과 21명이 '문제 있다'고 문책당했고 1명은 사법 처리됐다. 이 지역에선 3년 전부터 각종 부패 사건이 잇따랐다. 수십명의 당.정 간부들이 직권 남용.공금 횡령.뇌물 수수 혐의로 붙들려 '탐관 지역'으로 손꼽혀 왔다.

청렴 공시제는 관료들이 '보고서'를 통해 부패 행위를 고백하는 것부터 한다. 최근 3년간 12개 항의 부패 행위가 있었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내용이 부실하고 추상적이거나 사실을 감추면 혹독한 질책과 함께 보고서를 다시 써야 한다. 쓰양 현에서도 92명 중 41명이 보고서를 재작성했다. 그러면 감찰.기율.검찰 등 사정기관이 매달려 이중 삼중으로 심사한다.

이 제도의 백미는 신문.방송.게시물을 통해 주민에게 보고서를 널리 공지하는 데 있다. 만의 하나 숨긴 사실이 있으면 직접 신고토록 하기 위한 조치다. 부패를 제보하는 주민에겐 포상금이 주어진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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