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공공근로 '모래밭에 물붓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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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실직자를 위한 공공근로사업이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무엇보다 대상사업 선정과 인력투입 상황이 이상하다.

정부가 20개 대상 사업으로 선정한 '산불 감시' 의 경우를 보자. 비가 잦아지는 5월부터, 그것도 상대적으로 산림이 적은 대도시 지역에 투입인원이 많아 서울 3백46명.부산 3백40명.인천 2백64명.울산 2백68명 등이다. 반면 산이 많은 전북은 산불감시 요원이 6명.전남 27명.경북 61명.경남 44명 등이다.

그러다 보니 대도시 실직자들은 '돈 받고 등산하게 됐다' 고 한다. '위험제방 감시' 도 마찬가지. 소하천이 적고 관리가 잘된 서울이 6백12명.부산 2백68명.대구 2백55명인데 비만 오면 주택.논.밭이 물에 잠기는 전북은 1백35명.전남 1백95명.경남 1백43명이다.

환경부가 생태계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던 황소개구리 퇴치사업에는 고작 전국에 80명이 배정됐고,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대학박물관 유물정리에는 31명이 투입된다.

이같은 엉성한 인력 배치에 대해 서울시내 구청관계자는 "어차피 공공근로사업이란 실직자들에게 재고용 때까지 한시적으로 생계수단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 아니냐" 고 말한다.

이번 1차 사업에서 4만5천9백여명의 실직자에게 투입되는 예산은 모두 8백29억원. 정부가 공공근로사업에 투입키로 한 총예산 1조원의 일부다. 이 예산은 공무원들이 봉급에서 10~20%씩 떼내 조성한 '피눈물 나는' 기금이다.

이처럼 아까운 돈이 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SOC) 사업에 투입되는 것도 아니고, 중소기업들의 생산성 향상에 지원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공무원의 소득이 실직자에게 '이전' 되는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모래밭에 물붓기' 가 될 우려가 크다. 게다가 공공근로사업에 투입된 실직자와 영세민간에 갈등이 싹트고 있다.

소하천 정비 등 똑같은 성격의 일이지만 공공근로 실직자들은 하루 2만5천원의 일당을 받는다. 반면 상대적으로 생활이 더 어려운 취로사업 영세민들은 일당 1만7천원에 유급휴일도 없고 규정상 한달에 12일밖에 일하지 못한다.

우여곡절끝에 1차사업은 시작됐지만 오는 15일부터의 2차사업, 하반기 3차사업때부터라도 대상사업 선정 및 인력배치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1조원의 돈이 아무 성과물없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봉급을 떼낸 공무원에게도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박종권 사회부 기자〈parko@jo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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