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칼럼] ‘대리 달고 퇴출’ 피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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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취업준비생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서류에서 걸러진다’는 푸념을 손쉽게 듣고는 한다. 그만큼 취업준비생들에게는 구직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취업이 어렵다는 얘기는 이제 너무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기업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기업이나 일부 잘 나가는 몇몇 외국계, IT 기업들을 제외한 곳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 난리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생각할 때 이는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이지만 구직난과 구인난은 엄연히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취업준비생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포함한 소위 잘 나가는 기업의 공개 채용의 경우 경쟁률이 100대 1을 넘기는 것이 예삿일이지만 중소기업들의 모집 공고는 거들떠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취업의 해법은 어쩌면 이러한 아이러니에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왜 대기업과 외국계 등 일부 기업에 취업 지원서가 몰릴까. 연봉, 복지, 장래성 등이 이유로 꼽힌다. 최근에는 예전에 비해 학벌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 기업의 채용 전형에 몰려들고 있다. ‘쟤도 붙었는데’라는 심정에 일단 대기업만을 노리고 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단지 학벌만 좋은 사람이 아닌 진짜 실력 있는 인재를 뽑을 수 있고 구직자 입장에서도 학벌의 제약에서 벗어나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라는 것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취업 재수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대기업에 도전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낭비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은 들어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러나 그런 대기업에서 일개 신입 사원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있다. 대기업이란 조직에는 수많은 직원이 있기 때문에 경쟁은 어쩔 수 없다. 뛰어난 성과를 올린다고 해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인정받기란 어렵다. 일에 익숙할 때쯤이면 서서히 구조 조정의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소위 ‘대리 달고 퇴출’되는 식이다. 실력에 맞지 않게 경쟁을 하려다가 밀려나는 경우도 많다. 또 어떤 이는 그런 것이 싫어 견디지 못하고 본인이 그 조직을 박차고 나오는 사례도 있다. 이래도 장밋빛 대기업 생활을 꿈꾸고만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오히려 중소기업이 많은 취업 준비생에게 ‘기회의 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들은 규모면이나 연봉, 복지 면에서 확실히 영세하고 부족하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다. 자신의 의도가 반영될 수도 있고 때로는 자신이 어떤 일을 전담으로 맡아서 수행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한 성과도 인정받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런 인정이 빠른 승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똑같은 시기에 입사를 했더라도 대기업보다 승진이 빠를 수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연봉은 덤으로 따라오게 되고 말이다. 정말 뛰어난 능력과 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더 나아가서 그 조직의 임원이 될 수도 있다. 말단 사원으로 시작하여 대기업의 임원이 되는 것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그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회가 많다.

주변에 똑같은 나이에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과 중소기업에 입사한 사람이 있다면 비교해 보자.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그 사람들이 그 회사에서 어느 위치에 서는지를 본다면 무조건 대기업이 좋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여전히 대기업만 바라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이 아니면 이력서를 내지도 않고, 면접도 안 보러 가고, 심지어 대기업을 위해 취업 재수까지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대기업에 입사해서 진정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무조건 높이 볼 것이 아니라, 멀리 보는 지혜를 가져보자. 구직난과 구인난이 공존하는 이 시기는 분명 취업이 어려우면서도 기회가 될 수 있다.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중에서도 튼실한 알짜 기업을 찾아보자. 지금은 비록 작더라도 미래에 엄청난 발전을 할 수 있는 기업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런 기업들이 몇 십 년 후에는 대기업으로 성장할지 말이다.

유상일 칼럼니스트 sky_f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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