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 18.평양 대성산성

중앙일보

입력 1998.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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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평양으로 떠나기 이틀전, 역사학을 전공하는 친구 병욱이가 내 연구실로 찾아와 장도에 오르게 된 것을 축하하면서 은근히 부탁하는 척, 코치한 것이 내 심장에 오래도록 깊이 박혀 있었다.

"홍준아, 평양에 가면 대성산성도 가 보겠지?" "물론이지. 그러나 성벽은 다 무너지고 남문 (南門) 도 근래에 복원한 것이니 뭐 그리 볼 게 있을라고. "

"그러니까 잘 보고 오라는 것이야. 우리가 평양 하면 대동강변의 평양성을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고구려 사람들이 남하 (南下) 해 자리잡은 곳은 대성산 자락이고, 여기서 무려 1백50년을 보냈거든. 평양성에서 지낸 기간보다 두배나 긴 거지. "

이런 가르침이야말로 사람의 눈과 의식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이른바 '교시 (敎示)' 다. 그래서 대성산성을 답사하게 됐을 때 나는 병욱이 교시대로 주변의 지세를 면밀히 알아보고, 따져보고, 살펴보게 됐다.

평양에서 동북쪽으로 8㎞ 떨어진 곳에 있는 대성산은 평양의 진산 (鎭山) 이다. 백두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묘향산맥이 묘향산에 이르면서 문득 방향을 남쪽으로 바꾸어 곧장 내려오다가 대동강을 만나면서 멈춰 선 산이 대성산이다.

대성산은 비록 해발 2백74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주위가 평평한 벌방지대기 때문에 상대적인 높이는 아주 우뚝한 것이다. 그리하여 대성산은 평양 사람들의 큰 유원지이자 성지 (聖地) 로 개발돼 있다.

중앙동물원·식물원·어린이놀이터· 대성산류희장·혁명렬사릉 등이 모두 대성산 구역에 모여 있다.

그러나 문화유산답사자로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고구려의 유적들이다. 광개토왕 때 창건된 광법사 (廣法寺) 터, 고구려의 궁전인 안학궁 (安鶴宮) 터, 1천여기의 고구려시대 무덤떼, 그리고 대성산성.

우리는 이날 아침 일찍 출발해 뿌연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은 상태에서 광법사를 답사하고 이내 대성산성의 웅장한 남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는 곧장 산성으로 올랐다. 오래 전부터 순환도로가 포장된 산책길 주변에선 장수못·잉어못·미천호·사슴못·동천호 등 큰 연못이 곳곳에 있어 원족 (遠足) 나온 인민학교 학생들이 연못가에 줄지어 앉은 것이 아주 정겨운 정경으로 다가왔다.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일부러 나온 대성산 문화유적 관리소의 이창복 (李昌福·59) 소장은 장수못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산성엔 이런 연못이 99개 있었다는 전설이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1958년에 발굴해 보니까 연못이 무려 1백70개나 됐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전쟁 때 풍부한 수자원 구실을 한 걸 알게 됐습니다."

나는 소장의 진지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 역사적 내용보다 그가 눈을 꿈적이면서 짓는 티없이 맑은 미소와 아저씨 같은 친숙한 분위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레닌모자에 누런 인민복을 입고 빨간 김일성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지만 당신의 육십 풍상의 얼굴과 말씨에는 어디에고 이데올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시골에서 이장을 보고 있는 나의 외가댁 아저씨가 새마을 모자에 민방위복을 입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사상에서가 아니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줄밖에 모르는 순종에 있음과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소장을 아저씨라고 부르고만 싶은데 리정남 연구사는 말끝마다 "소장아바이" 라고 불렀다.

"리선생, 나도 소장아바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아바이는 존칭입니다."

설명을 들으니 북한에는 동무.동지.아바이라는 호칭이 있다. 동무는 친구나 손아래 사람의 이름이나 관직에 붙여지고, 동지는 윗사람이나 나이든 분의 이름이나 직함에 붙이는 존칭이다. 과장동무·철수동무는 낮춤이고 과장동지.교수동지는 존칭이다.

그리고 동지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많으면 아바이가 붙는다는 것이다.

북한엔 님이라는 어미가 붙는 것은 수령님·장군님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하고, 체제 밖에 있는 사람에겐 모두 선생을 이름이나 직함 뒤에 붙인다.

기자선생·의사선생·홍준선생 등으로 부르는 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 아니라 남한 말의 씨 (氏)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꼭 "교수선생" 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대성산성은 남한의 남한산성과 거의 비슷한 규모로 총 길이 약 7㎞, 겹성의 둘레로 치면 9㎞나 된다. 대성산은 절묘하게도 분화구처럼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고 동서남북으로 장수봉·을지봉·소문봉·주작봉 등이 빙 둘러 있었는데 이 산봉우리를 성벽으로 연결해 성채를 쌓았으니 이른바 고로봉식 (고峰式) 산성이다.

'소장아바이' 는 대성산성에서 제일 좋은 전망을 갖고 있다는 소문봉 정자로 우리를 안내했다. 소문봉에 오르니 산성의 봉우리와 봉우리마다 세워진 정자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장쾌하고 넉넉한 느낌이란 마치 고구려의 기상을 체감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성벽의 지붕돌에 기대어 산성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아침 안개가 걷히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들판이 한없이 펼쳐진다. 그 드넓음이란 김제 만경평야 만큼이나 광활해 보였다면 과장일까? 아마도 지린성 (吉林省) 지안 (集安) 의 국내성에서 넓은 평야를 바라보며 영토를 넓혔던 고구려인들의 눈에는 이 넓은 평야는 가나안의 옥토처럼 비쳤을 것만 같다. 병욱이가 잘 보고 오라는 것은 바로 이 점이었을 것이다.

소장아바이는 산성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대성산의 동쪽과 서쪽은 천연의 절벽이고 남쪽은 안학궁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높은 성벽으로 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쪽은 산자락이 제창 이어져 있으니 수비방향은 바로 남쪽입니다."

소장아바이의 손짓에 따라 남쪽으로 내다보니 소문봉 아래로는 반듯하게 정비된 안학궁터가 아련히 떠올랐다. 저기가 바로 427년부터 586년까지 고구려의 궁전이 있던 안학궁 자리다. 대성산의 생김새가 학이 편안하게 쉬고 있는 형세라 안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는 감회에 젖어 넋을 잃고 남쪽의 안학궁을 내다보는데 소장아바이가 부른다.

"교수선생, 이쪽으로 내려갑시다. 아래에 보면 성돌을 엇물리면서 일매지게 쌓은 성벽이 잘 보입니다. 여기선 영화촬영을 많이 해갔습니다."

나는 소장아바이의 정겨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정을 다해 대답한다는 것이 무심결에 "예! 아바이동무, 곧 갑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점잖은 리선생이 깜짝 놀라며 내게 말했다.

"교수선생, 아바이동무라는 말은 없습니다. 아바이는 존칭이고 동무는 내림인데, 올렸다 내릴 수 있습니까?" "아, 실수했습니다." 나는 고개 숙여 사과하고는 더 큰 목청으로 성벽 아래에 대고 소려쳤다. "소장아바이, 인차 내려가겠습니다!"

글 = 유홍준 (영남대교수·박물관장) 사진 = 김형수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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