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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사건 수사 위해선 중수부는 필요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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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대검 중수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후폭풍이 거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지난달 23일)한 데 이어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도 법원에서 기각(2일)됐다. 천 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무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천 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 직후 임채진 검찰총장은 사표를 던졌다. 대검찰청 8층 총장실은 당분간 빈 방으로 남아 있을 전망이다.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대한민국 검찰. 중앙 SUNDAY가 전직 검찰 총수 4명과 김종구 전 법무부 장관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김종구 전 법무부 장관

-검찰이 흔들리고 있다.
“흔들릴 게 뭐 있나. 언론이 흔들리고 있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 서거로 바뀌고 국민이 눈물 흘리는 장면이 보도되는 걸 보면서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해 파리에 입성할 때를 생각했다. 그가 엘바 섬을 탈출할 때 프랑스 언론들은 ‘악마가 마르세유를 탈출했다’고 썼다. 그러다 나폴레옹이 파리에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황제, 내일 파리 입성’으로 바뀌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어떻게 보나.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머스키라는 사람이 출마를 했었다. 그는 선거 유세 도중 자신이 모략을 받은 것을 얘기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언론은 ‘작은 일에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모진 시련을 겪어야 하는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질타했다. 머스키는 일찌감치 유력 후보에서 제외됐다.”

-대검 중수부 폐지론에 대한 견해는.
“이런 시기에 중수부 폐지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얘기다. 정치적인 사건은 반드시 상대편이 있다. 어느 한쪽에 유리한 입장으로 비치면 다른 한쪽에서 여지없이 정치적이라고 비판한다. 정치적인 사건을 수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 검찰의 숙명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언론 보도를 어떻게 보나.
“언론이 ‘저런 격한 성격을 갖고 나랏일을 처리했다면 그동안 제대로 정책 결정을 했을까 의심이 된다’는 지적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흰개미떼처럼 한쪽으로 쏠려 버린 것은 아닌가.”

●신승남 전 총장

-검찰이 위기다.
“검찰이 언제 편할 날이 있었나.”

-임채진 전 총장이 사퇴했는데.
“본인도 괴로웠을 것이다. 그 입장에서 보면 번뇌가 많다. 옆에서 보기는 쉽지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조직을 위해 사표를 던졌을 것이다.”

-대검 중수부의 존폐에 대한 견해는.
“필요악이다. 검찰총장의 명을 받아 대형 사건을 수사할 때는 절실히 필요한 조직이다. 중수부가 아니면 맡아서 할 데가 없다. 수사 보안도 지키기 어렵고 정치권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없애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질타의 대상이 된다. 어찌 보면 천덕꾸러기 신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형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맡길 수는 없다. 검찰총장의 권한이 약화된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검이 감당하기 힘든데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다고 잘 되겠나. 해답이 없다. 과감하게 검찰과 언론이 협의해 검찰 수사 단계에서의 보도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그래서 수사 브리핑 제도가 있는 것인데 요즘 브리핑 제도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다.
“브리핑 제도는 기자들이 오보를 쓰지 않게 하려고 만든 것이다. 수사에도 혼선이 자꾸 생기니까 수사에 지장을 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수사 상황을 설명해 준 거다. 외국 같은 데는 수사 단계에서 기사를 쓰지 않는다. 언론 보도 때문에 심적 고통을 겪다가 죽는 사람이 생긴다는 생각도 할 때가 됐다. 추측성 보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일절 신문도 안 보고 방송도 안 봤다. 생각하지 않았다.”

●김각영 전 총장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표적 수사라는 주장이 있다.
“이번 사안은 특이해 보이긴 하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청와대에 세무조사 결과를 보고하고 검찰에 고발이 이뤄진다. 수사 지휘 자체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문을 갖게 한다.”

-대검 중수부 폐지론이 나오는데.
“그렇다고 검찰총장이 직할 수사기관이 없다면 어떤 일을 할 수가 있겠나. 중수부를 수사기획부서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지만 못 하는 건 그래서는 조직 장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중수부를 없애서는 안 된다.”

-공수처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나.
“공수처 얘기를 하는데 고등검사장급 이상의 처장 지휘로 정치권 연루 비리 등 대형 사건을 수사토록 하자는 것 아닌가. 실용성은 있겠지만 검찰총장의 수사권이 박탈되면 문제가 더 많을 것이다.”

-검찰 조직의 정비를 위한 방안이 있다면.
“검찰총장에게 인사권을 줘야 한다. 일선 검사들에 대한 수사 지휘권만 주고 인사권은 안 줬다. 법무부 장관이 갖고 있다. 내가 사실 노 전 대통령과 싸운 이유도 그거였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 얼굴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혼자 인사를 단행하기에 ‘왜 나하고 협의도 없이 하느냐’고 받아쳤더니 강 장관이 협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건 사실과 달랐다. 그 뒤에도 규정상 검찰 인사 때 장관과 총장이 협의해야 한다는 정도지 구속력은 없다. 인사·예산권이 없는 게 무슨 검찰 총수인가. 일반직 인사만 하라는 건가.”(김 전 총장은 김대중 정부 말기에 총장에 임명됐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찰 수뇌부를 믿을 수 없다’고 밝히자 사표를 냈다)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생각은.
“저인망식 조사 방법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본질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게 많다. 사회 구성원이 그걸 참는 것은 법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다. 그걸 구분 않고 발생한 결과나 과정만 갖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건 옳지 않다.”


●송광수 전 총장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표를 낸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무슨 상황이 생겼다 해서 범죄 수사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 풍토가 없다면 검찰총장이 왜 나갔겠나. 본질은 누가 책임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공수처가 수사하면 문제가 안 생길 것 같은가. 공수처가 수사하다가 조사받던 사람이 사고가 나면 공수처장에게 책임지라고 할 것이다.”

-천신일 회장에 대해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해 검찰 조직에 타격을 줬다는 비판 여론도 높다.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으면 더 난리가 났을 것이다. 검찰이 대통령 측근이라고 해서 봐준다고 말이다. 지금은 검찰이 동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수사팀이 마무리를 잘해야 할 것 같다. 공격도 중요하지만 철군이 굉장히 중요하다. 철군하는 걸 습격해 이기는 전투가 많다. 삼국지에도 보면 전군이 후군이 되고 후군이 전군이 되고 순차적으로 퇴각하는 게 전술에 나온다.”

-대검 중수부장이 무리한 수사를 주도했다는 지적도 많은데.
“사람들이 범죄를 안 저질렀으면 이인규 중수부장이 아무리 고함을 지른들 누가 거들떠보겠나.”

-검찰총장 재임 중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내 목을 먼저 쳐라’며 반대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검 중수부라서 괴롭힌 건가.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면 그렇지 않을 것 같나. 본질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 본질이란 게 뭔가
“그런 사건이 없어져야 한다. 정치인들이나 혹은 관련된 사람들이 범죄를 안 저질러야 한다. 왜 정치인들이 악을 저지르나. 정경유착이 돼 범죄를 저지르니까 중수부가 나서는 거다. 정치권에 큰 사건 수사할 게 없고, 몇 년만 권력형 비리 사건이 없으면 자연히 중수부는 수사지도부로 바뀐다. (다행인 것은)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고 정경유착도 많이 없어졌다. 금융실명제 도입 이후 기업이 비자금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려워졌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아직 범죄가 많은 편이다. 일본에선 공무원이 몇십만 엔만 받아도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한 언론 보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수사 과정이 상세히 보도되니 문제다. 신문보다 방송에 나는 게 더 아프다. 반복적으로 나오니까. 심지어 미국의 아파트까지 가 현장을 찍고, 아들이 수사받고 나오는데 차 안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밀고 찍고 하는데 언론도 책임이 크다. 무차별 보도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지나.”

●정상명 전 총장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검찰이 사면초가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이 거짓말했다고 보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이 정상문씨가 체포되고 나서 올린 글에 ‘아닌 것은 아닌 대로 사실은 사실대로 밝히겠다’고 한 부분이 있다. 그게 그의 삶의 일부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고 주장해도 아무도 안 믿어 준다. 다른 사람들이 다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럼 바보가 되는 것이다. 바보니까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검사 앞에 최고위 공직자가 있고 대기업도 아닌 지방 사업가가 있다. 사업가는 돈을 줬다고 하고 최고위 공직자는 모른다고 한다. 이때 누구 말을 믿을 건가. 대통령이 일개 사업가에게 돈을 달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나. 없다. 가장 타락한 공무원도 가장 깨끗한 장사치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수사팀으로선 노 전 대통령이 대질신문을 거부해 더욱 혐의를 두게 된 것 같다.
“대질은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다. 김태정 전 법무부 장관이 옷 로비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밑의 하급 수사관과 대질신문을 했었나.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전직 대통령과 장사치를 대질신문하는 것 자체가 모욕 아닌가.”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자백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본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60세가 넘은 사람이 부인하고 자식들에게 거짓말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나. 절대 아니다. 이럴 때 검찰이 회갑 시계 같은 부분을 노출하는 것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수사의 본류에 해당하는 것만 하면 되지 곁가지까지 저인망식으로 수사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이 몰랐다고 확신한다. 장례식에 수백만 명이 모였다면 왜일까. 그건 진정성 때문이다. 그런 그가 거짓말을 했을까.”

-임채진 총장 사퇴를 어떻게 보나.
“검찰총장은 이 사건의 주임검사다. 대검 중수부장이나 검사장들은 총장의 참모다. 그 사람들은 결정권이 없다. 총장이 결정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총장은 계속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지시했을 것이다. 물론 수사는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계속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검찰 조직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뭘까.
“이번 사건을 통해 검찰은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끝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를 지금 쉽게 없앨 수 있겠나. 중수부가 직접 수사 기능을 가져야 할지는 검찰이 처음 생길 때부터 끊임없이 논의돼 왔다. 지금 없애면 현 검찰 간부나 수사팀이 받아들이겠나.”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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