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리포트]실업자들 보란듯이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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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失業大軍排長龍, 政府措施一條蟲' (실업자는 용처럼 길게 늘어섰는데 정부대책은 벌레 길이만 하구나) .홍콩의 자선단체인 옥스팜이 26일 홍콩내 한 사회단체 건물에서 주선한 '실업자 정상회담' 세미나장에 내걸린 플래카드에 적힌 문구다.

실업자들이 한데 모여 대책을 토론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이 자리에는 1백50명의 홍콩 실업자와 14개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기죽지 말자는 뜻에서 세미나 이름을 '실업자 정상회담'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무튼 출발은 매우 활기찼다. 그러나 실업자들의 기구한 사연이 하나둘씩 발표되면서 분위기는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설움, 나이가 많아 당한 괄시 등이 하나둘씩 터져나오자 모임장은 순식간에 눈물바다로 변했다. 직업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대다수 남자 실업자들도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곧이어 정부의 무대책에 대한 성토가 터져나왔다.

참석자들은 3시간에 걸친 격론끝에 ▶대형공사를 늘릴 것 ▶탁아제도를 강화할 것 ▶실업자를 고용하는 업체에 대한 단기세제감면법을 제정할 것 ▶실업자에게 직장을 알선해주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것 ▶실업지원금 수혜자의 자격조건을 완화할 것 등 5개항의 대정부 요구사항에 합의한 뒤 축 처진 어깨로 세미나장을 빠져나갔다.

홍콩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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