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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분쟁' 화해로 푼다…타협책 찾는 사례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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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4일 서울지법 20층 휴게실. 지난 2월 서울 S대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어 대구지사로 발령받은 廉모 (25) 씨와 그가 세들어 살던 서울관악구신림9동 원룸 주인 朴모 (48) 씨가 마주앉았다.

지난 2월24일로 전세기간이 끝났지만 廉씨는 보증금 3천5백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채 지난달 12일 대구로 이사했고 같은달 25일 서울지법에 보증금반환 소송을 냈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가압류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지방으로 발령받는 바람에 그만…. " "이게 뭐 자네 탓인가. 탓이라면 IMF겠지. "

廉씨와 朴씨는 결국 서울지법 조정실에서 민사25단독 박해식 (朴海植) 판사의 중재로 가압류를 풀고 소송 대신 화해를 선택했다. 조건은 6월22일까지 보증금 반환시기를 늦추는 대신 연리 18%의 지연이자를 朴씨가 물고 반환시한을 넘기면 연리 30%의 벌칙이율을 적용키로 했다.

IMF사태 이후 전세 대란 (大亂) 속에 보증금 분쟁에 휩싸인 세입자와 집주인들이 새로운 채권.채무관계를 설정하며 한발씩 양보해 해결책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소송 전 단계인 내용증명 우편 발송이 2~3월중 1백10만1백78건으로 지난해보다 53%나 증가, 전세보증금 관련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고되는 가운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소송 대신 당사자간 합의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송을 피해 조정을 신청한 사건이 서울지법에만 지난 1월 25건, 2월 87건에 이어 3월 1백3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4배에 달하는 점으로 미뤄봐도 화해에 의한 해법찾기 추세를 읽을 수 있다.

전세보증금 8천만원짜리 서울서초구반포동 22평형 아파트에 살던 李모 (38) 씨도 화해로 해법을 찾은 케이스. 지난 20일로 전세기간 만료가 다가오자 법원을 찾는 대신 집주인과 대화를 시도, 전세가를 5천5백만원으로 낮춰 새 세입자를 찾고 나머지 전세금은 3개월짜리 약속어음으로 받기로 했다.

李씨와 집주인은 합의내용을 문서로 작성해 서울종로구 S합동법률사무소에 찾아가 공증받고 문제를 해결했다. 공증비용 12만여원은 절반씩 부담했고 공증받는 시간은 10여분에 불과했다.

서울지법 박해식판사는 "분쟁 해결의 지름길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있는 만큼 서로의 입장을 고집하기보다 법원의 조정사례를 기준으로 합리적 대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조언했다.

본사 취재팀이 전세금 분쟁해결 기준이 될 서울지법 전세금 전담재판부의 4월중 화해사례 20건을 분석한 결과 ▶보증금 반환시한을 2~3개월 늦춰주고 ▶시한을 못지키면 연리 25~30%의 반환지연 벌칙이자를 물게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박종권·권영민·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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