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한의 합의 위반 엄중 대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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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가 우리 해군의 사격을 받자 퇴각했다. 이 경비정은 핫라인을 통한 우리 함정의 무전경고를 네차례나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침범했다. 월선 경위에 대해서도 아무런 해명조차 없다. 불과 한달 전에 체결된 남북 군당국 간 합의 내용과 정신을 철저히 유린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남북 군당국 간 합의에서 NLL 문제가 엉거주춤하게 넘어간 데 대해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이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북한이 합의에 응한 것은 식량 지원을 받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었느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합의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북한의 태도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이러니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깬다면 이는 북한에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경고한다. 남북경협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의 지원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침범은 NLL을 분쟁지역화하려는 북한의 기본 전략에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정부도 북한의 협상전술에 대해 더 이상 어수룩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 협상 당시 우리가 NLL 문제를 명백하게 못박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그 틈을 파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물렁하게 대처하지 않았는지 군당국은 반성해야 한다. 핫라인을 설치했다느니, 장성급 회담에 성과가 있었다느니 하는 자찬이 결국 우리 일방의 자찬이었다는 점을 지금이라도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 합의 위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가시적으로 북한에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약속한 쌀 지원도 이런 상황에서는 다시 검토할 수 있음을 북한에 알릴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합의를 계속 무시할 경우 서해상에서의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방백서에서 '주적'이라는 표현을 없애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우리의 대응 태세에 허점이 생긴다면 국민적 반발이 엄청나게 고조될 것이라는 점을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