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방빼는 법' 찾아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주택시장이 외환위기에 한방 제대로 맞았다.제도금융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전세시장은 아예 빈사상태다.투기가 아니라 '이사 못 간다' 가 사회문제가 되기는 처음이다.

전세는 정부개입 없이 개인간 거래로 자생 (自生) 한 세계 유일의 제도다.주택가격은 높은데 제도금융은 허술하고, 월세는 언제 나가랄지 모르고, 이자 (2부) 도 비싸고…. 매매와 월세 틈새를 비집고 '주거서비스에 대한 대가+2년 거주권+더 오를 집값 환산평가액' 을 매개로 전세시장이 형성됐다.

외환위기는 우선 전세시장의 주거서비스가격을 추락시켰다.실업.감봉 등 실질소득은 하락했고, 관리비.교통비 등 부담은 늘어 지불능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외곽지 대형아파트부터 전세값이 떨어졌다.

2년 거주권 값도 잇따른 정부의 주택공급활성화 대책으로 하락했고, "집값이 더 떨어진다" 는 예측은 누구나 한다.

이른바 수요자시장이 된 것이다.여기에 계약기간이 남은 사람까지 들먹인다.규모를 줄여 고금리시대 재테크를 하겠다는 사람, 전세시장이 아예 꽁꽁 묶일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로 대규모단지엔 물량이 폭주하고 낙폭도 유난히 크다.대처방안으로 차액을 융자해주자는 논의가 있다.주택소유자가 빚을 내 차액을 갚으라는 논리다.

소유자가 응할까. 이자율도 문제고, 은행도 달가워하지 않는다.결국 소유자는 한껏 버티며 소송까지 갈 게 틀림없다.소송은 그러나 세입자.소유자 모두에게 물적.심리적 부담이 되고, 자칫하면 주택시장 전체를 교란할 수 있는 위험한 방책이다.

이럴 땐 윌리엄 코스 이론이 제격이다.외부개입없이 당사자간 거래로 시장균형점에 도달하는 방법이다.전세값이 오를 때 한꺼번에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내려갈 때도 단계를 거치면 된다.

1천만원이 내린 집은 5백만원만 소유자가 내주고 재계약을 하든지, 전세기간을 흥정하는 방법이다.재계약합의를 이룬 주택에 저리융자 등 혜택을 주면 효과가 더 있다.어떻게든 재계약률만 높이면 전세파동을 잠재울 수 있다.

장기적으론 전세를 월세로 돌려야 한다. 단숨엔 힘들 테니, 올해는 전세금의 10%를 월세로 돌리고, 내년에는 20%를… 하는 식이다.월세이자율을 대폭 떨어뜨리고, 공공부문이 주도해 "월세도 괜찮다" 는 인식을 심어주면 더욱 좋다.이번 전세파동은 경성 (硬性) 주택시장이 여건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벌어졌다는 점을 명심하자.

음성직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