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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공백, 코너에 몰린 중수부 … 출구 안 보이는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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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은석 대검 대변인은 3일 임채진 검찰총장을 대신해 ‘사퇴의 변(辯)’을 읽은 뒤 “임 총장의 인간적 고뇌와 진정성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당분간 임 총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기로 밝히면서 검찰 조직은 일정 기간 수장이 없는 상태에서 파행적으로 운영될 공산이 커졌다.

임 총장이 청와대의 만류를 이유로 업무에 복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법무부의 한 간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검찰에 대한 비난여론으로 조직 전체가 사상 초유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임 총장마저 사표를 내 일선 검사들의 동요가 더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의 정당성이 또다시 의심받게 되자 임 총장이 모든 짐을 안고 가려고 결심을 앞당긴 것 같다”면서도 “임 총장의 사퇴로 사태가 수습될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는 ▶이인규 중수부장을 비롯한 수사팀 퇴진 ▶수사관행 개선을 위한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의 입장 표명 등의 방안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번 수사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현재의 여론을 감안했을 땐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사면초가의 대검 중수부=대검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천신일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조목조목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해 영장을 다시 청구할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수사의 양대 축인 노 전 대통령과 천 회장 사건이 모두 실패로 끝나게 됐다. 수사팀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초대형 악재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는 명분을 앞세워 피해보려 했던 중수부의 실낱 같은 기대가 무너진 셈이다.

중수부 관계자는 “도와주는 곳이 없다. 완전히 ‘왕따’가 됐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여기다 중수부에 대한 검찰 안팎에서의 비난도 거세다. 이인규 중수부장과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 등을 피의사실 공표혐의로 고발한 민주당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을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한 제1책임자인 이인규 중수부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검찰은 불행의 씨앗을 스스로 뿌렸다는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자유선진당), “임 총장 사퇴가 정치검찰의 행태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며 검찰 개혁의 신호탄이 돼야 한다”(민주노동당)는 요구도 나왔다. 한나라당도 “검찰의 수사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중수부의 무리한 수사를 지적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방의 한 고검장은 “전직 대통령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듯한 수사가 국가적 불행을 가져왔다”며 “수사팀이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임 총장의 사표 제출을 계기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김승현·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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