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서 미출소 양심수 편지 게시판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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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 아름다운 봄날에 꽃그림이 수놓아진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정말이지 요새는 입고 있는 이 수의 (囚衣)가 수의 (壽衣) 같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눈을 뜨고 꽃을 피워내니 어느 수형자인들 저 쇠창살이 힘겹지 않을까요. " (시인 박영희씨가 9일 대구교도소에서 민가협으로 보낸 편지 중) 봄이 왔으나 그것을 실감할 수 없는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의 사람들. 지난번 특별사면에서 제외돼 여전히 감옥에 갇혀있는 양심수들이다.

PC통신 하이텔 '편지마을' (GO POSTINO)에선 4월 특집으로 민가협과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편지를 소개하는 '창살 너머 편지 한통' 을 마련했다.

한줄한줄 배인 바깥 세상에 대한 갈망. 7년째 복역중인 박노해씨는 옥중시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에서 "창살 안에 갇혔어도/푸른 숲 파란 하늘 여름 보리를 기억하네 (…) 너는 나를 지우지 못하네/푸른 기억을/뜨거운 노래를/위로 위로 나는 꿈을/내 핏속의 열망을/가두지 못하네" 라고 노래한다.

백태웅씨는 약혼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감옥에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입니까. (…) 고민한 끝에 그럴 듯한 답을 찾아냈어요. 내게 힘이 넘칠 때!

(…) 그런데도 일을 할 수 없다는 것, 그건 내가 살아있음에 대한 부정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라고 토로한다.

사소한 것도 그들에겐 위로가 된다. "가보아야 결국은 또다른 감옥이지만 차창 너머로 바깥 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감 (移監) 은 분명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잠시 수인임을 잊었습니다.그저 '참 좋구나!' " (85년 구미유학생사건으로 복역중인 황대권씨) 봄날에 "꽃편지가 아닌 검열편지를 쓰는" 그들이지만 고운 햇살과 눈에 가득 들어오는 아지랑이들로 "한해의 시작은 1월이 아니라 봄" 이다.여전히 그들의 가슴은 답답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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