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받은 돈으로 미국 집 산 것 알고 충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경위를 수사 중인 경남지방경찰청은 2일 경남 김해시 봉화산 부엉이바위 일원에서 현장조사를 벌였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현장조사를 지켜본 뒤 두 손을 모은 채 앉아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가 유학비용 정도로 이야기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미국에 집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알고 더욱 충격을 받았다”고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본지는 2일 문 전 실장과 전화 통화를 했으나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문 전 실장은 1일 가진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100만 달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올해 2월께였다”며 “정상문 전 비서관이 권양숙 여사에게 ‘박연차 회장이 돈을 건넨 사실을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먼저 전하고, 이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정 전 비서관이 봉하에 내려오면 늘 대통령을 먼저 뵈었는데, 그날은 권 여사를 먼저 만났다”며 “대통령이 그 점을 의아하게 생각해 두 분이 있는 방에 들어가 보니 권 여사가 넋이 나가 울고 있었다. 그제야 (정 전 비서관이) 이실직고해 대통령이 화도 내고 했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들은 정 전 비서관 표현에 따르면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탈진한 상태에서 거의 말씀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의 특수활동비 횡령과 관련, 문 전 실장은 “사적인 잘못을 넘어서서 공금을 횡령하기도 했다는 면에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일들이 퇴임을 대비해 정 비서관이 준비한 것이라는 점을 아시기 때문에 더 괴로워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도덕적 책임을 통렬하게 느끼면서 법적 책임을 놓고 다퉈야 할 상황을 참으로 구차하게 여겼고, ‘차라리 내가 다 받았다고 인정하는 게 낫지 않으냐’는 생각을 여러 번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법적인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나 우리는 자신했다”며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지향했던 가치까지 깡그리 부정당하는 상황이 되니 절망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문 전 실장은 검찰 수사 방식에 대해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까지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여러 가지 수사와 관련된 여러 상황들이 그분을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간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현 수사팀으로서는 이미 결론을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에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게 불가능해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며 “이번 검찰 수사는 유죄라는 결론을 처음부터 내려놓고 모든 조사를 거기에 맞춰서 해나간 것”이라고 했다.

박연차 회장에 대해선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짐작하는 바도 있고 직간접적으로 들은 바도 있다.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건을 놓고 검찰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진 않다”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나 소환자들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수사 방식과 대검찰청에서 유일하게 중앙수사부만이 직접 수사권을 갖는 게 바람직한 건지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석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