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개조 프로젝트] 이번 주 참가자 서울 강남중 3학년 백명지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2면

지난달 27일 경찰이 되고 싶어하는 명지양과 함께 경기도 용인에 있는 경찰대를 찾았다. 대학생 멘토 김아현(22·경찰대 법학과 3)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경찰대에 너무 가보고 싶었다”며 들뜬 명지는 김씨를 만나서도 “왜 경찰이 되려고 했어요. 언제부터 준비를 했어요”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집으로 돌아온 명지는 그 전과 달랐다. 표정도 없고 말수도 줄었다. 김흥규(서울 광신고) 교사와 수학 교구로 놀이를 할 때는 잠시 풀렸던 얼굴이 학습 컨설팅을 받을 때는 다시 굳어졌다. 비상공부연구소 박재원 소장의 조언에 “하라는 대로 해서 안 되면 어떻게 해요”라며 당돌하게 물었다. 엄마 이남숙씨는 “명지가 좋아하는 일은 잘하지만 자기 생각이 강해 하고 싶은 얘기를 참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프로젝트팀은 이씨의 말에서 명지를 도울 ‘답’을 찾았다.

공부는 ‘재밌는 게임’이다

명지의 성적은 ‘상위권’. 간혹 평균 90점을 넘기도 하지만 대체로 턱걸이 수준이다. 엄마나 명지나 ‘조금만 더’ 나왔으면 싶은데 쉽지 않다.

박 소장은 명지에게 어느 순간 ‘몰입’하는지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재밌을 때’였다. 박 소장은 “공부의 목적이 경찰대지만 공부하는 순간만큼은 ‘재미’가 목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젝트팀은 ‘90점대 턱걸이’를 탈출할 방법으로 ‘유쾌하게 공부할 것’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온 가족이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각자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했다. 가족의 ‘소통’ 시간을 늘리는 동시에 언어 학습에도 도움을 주려는 의도다. 박 소장은 “이 시간을 통해 명지의 뚜렷한 자기 주장이 강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가족이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의견을 나눌 것”을 권했다.

수학을 싫어하는 명지에게 김 교사는 수학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생각하는 힘’을 강조했다. ‘이차방정식은 왜 근이 2개일까? 이차라서 그런가?’처럼 의문을 갖고 생각하다 보면 ‘재미’가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주의 ‘습관’이 발목 잡는다

명지는 “꾸준히 성적이 올라 지금은 전교 30등대지만 더 이상 오르지 않아 한계를 느낀다”고 말했다. 게다가 다른 과목은 90점 이상이지만 수학은 90점대 진입에 어려움이 많다. 사실 명지도 그 이유를 잘 안다. 학원에 가지 않고 혼자 공부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학원 등을 통해 머릿속에 넣는 건 많은데 자습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자기 것으로 완성시키지 못하는 특징을 보였다.

명지는 지금 학원에서 일대일 지도를 받고 있다. 수강료는 비싸지만 명지의 ‘완벽주의 성격’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씨는 “명지가 수학 10개 문제를 배우면 강사에게 10개 문제를 다 물어보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공부할 때 이런 완벽주의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학습지 광고처럼 ‘집합’만 공부하다 ‘날 샐 수 있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제목만 본다는 생각으로 전체를 훑고, 다시 볼 때는 중간 제목, 소제목, 내용 순서로 공부한다. 예컨대 수학 교과서를 공부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①개념 보기 ②예제 풀기 ③연습문제 풀기 ④종합문제 순서로 ‘다시 보기’를 한다. 김 교사는 “모르는 것은 표시해 두면 ‘다시 보기’ 단계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명지양(中)이 미래 선배가 될 경찰대생들 속에서 활짝 웃었다. [황정옥 기자]


“나쁜 사람 잡는 경찰 되고 싶어요”

가끔 외고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학습성향검사 결과 명지는 이과에 가까웠다. 박 소장은 “명지가 성적이 되더라도 외고는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욕심은 있지만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이다. 명지는 1~2학년 때 부회장을 하다 3학년 때 경쟁을 해야 할 상황이 되자 선도부에 들어가 선도부장이 됐다. 수준별 수업에서도 영어 상반에서 하반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이씨는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이길 원하는 것 같다”며 “본인이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면 극소심해지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중1 때부터 명지의 꿈은 경찰대에 입학해 경찰관이 되는 것. 대학생 멘토 김씨는 명지에게 “어려서부터 경찰대에 가겠다는 확고한 꿈이 있고, 중3 겨울방학이라는 ‘대역전의 기회’가 있기 때문에 낙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3년 전 여학생 수석으로 경찰대에 입학했다. 그 역시 수학이 약해 중3 겨울방학 동안 수학 10-가 문제집 18권을 풀고 오답노트까지 만들었다.

김씨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명지에게 쉬는 시간 10분을 확실히 이용하라고 일렀다. 영어는 지문이 길어 10분 안에 끝내기 힘들지만 수학은 10분 단위로 끊어도 흐름이 깨지지 않는다. 김씨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하면 머릿속에 오래 남는데, 쉬는 시간을 활용해 친구에게 설명도 하고 얘기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경찰 될 사람이 혼자만 잘되겠다며 친구들과 담을 쌓고 이기적으로 공부하면 되겠느냐”고 덧붙였다. 명지의 꿈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박정현 기자

명지네 가족의 다짐

숙제에 치여 여유 없는 하루하루
시간 잘 쓰면 성적 오를 거라 믿어요

자기 주장이 강한 딸 명지(左)가 어머니 이명숙씨에겐 자랑거리다. [황정옥 기자]

‘딸’ 백명지
저는 숙제에 치여 삽니다. 집에서는 주로 학원 숙제를 합니다. 시간 활용을 잘 못해서지요. 학원 숙제도 집중만 잘하면 여유가 생길 텐데 딴짓도 하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집중이 안 돼요. 그러니 늘 시간이 부족해요.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체질이라 아침 공부도 못합니다. 그러니 늘 숙제만 하며 살게 되는 거죠. ‘외고에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꿈이 있다는 거죠. 가고 싶은 대학도 있고요. 하지만 그 대학 가기에는 공부량이 턱없이 부족해요. 비싼 학원을 다녀도 평균이 80~90점대에 머물고 있고요. 시간 활용만 잘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될 거라 믿습니다.

‘아빠’ 백천이 아빠로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게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새벽에 일을 나가다 보니 아이들 공부는 엄마에게 맡깁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대학 다니는 큰애도 있어 사실 벅찹니다. 예전에는 술도 좋아하고 직장을 자주 옮겨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 명지가 불안했을 겁니다. 지금은 열심히 살고 아이들과 외식도 잘하고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니까 명지가 종이에 상장을 만들어 줄 정도로 아빠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보기에는 명지가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욕심을 조금 줄였으면 합니다.

‘엄마’ 이남숙 명지는 말이나 생각까지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예민한 편이고,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집안 형편 때문에 지원해주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어요. 전교 70등대에서 성적이 올라 지금은 30등대지만 명지도, 저도 한계를 느낍니다. 자기 주장이 강해 엄마나 외할아버지와 정당이나 전교조 등을 주제로 말싸움을 하기도 해요. 누가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과감히 지적하기도 합니다. 경쟁을 싫어하고 빨리 포기하는 편입니다. 자신감이나 목표는 또래에 비해 무서울 만큼 강한데 방법을 몰라 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합니다. 부족한 가정에서 스스로 할 줄 아는 아이이기에 작은 도움이 큰 그릇을 만드는 데 좋은 멘토가 될 거라 믿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