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8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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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그 순간, 태호의 눈에서 불이 튀는 것 같았다.때를 같이하여 두 사람의 웨이터들이 양쪽에서 태호를 에워싸며 두 팔을 비틀어 쥐었다.태호가 자제력을 잃어버린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두 팔을 낚아채고 있던 웨이터들의 목덜미가 낚시로 꿴 것처럼 태호의 양 겨드랑이에 끼여든 것도 그때였다.탁월한 순발력이었으면서도 불길한 징조였다.

그의 양팔에 끼여든 웨이터들의 정수리가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가 호도알 깨지는 소리처럼 날카로운가 했는데,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직립의 정체성을 잃고 비틀거리면서 뒤로 밀려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흡사 두 개의 공이 서로 난데없이 맞부딪치면서 일으킨 역반사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부리를 헌 북새통은 그것으로 그치지는 않았다.주변에 있던 종업원들이 우르르 두 사람 주위로 몰려들었다.반사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숍에 있던 투숙객들도 구경거리를 보자 하고 예외없이 우르르 로비 쪽으로 몰려나오고 있었다. 철규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진작 그가 나서서 태호를 제지했더라면, 폭력사태만큼은 일찌감치 진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었다.그러나 태호의 대응이 매우 통쾌했으므로 어설픈 중재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정수리를 맞부딪쳤던 웨이터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몸집은 왜소한 편이었지만,가무잡잡한 피부에 당차게 생긴 웨이터는 이마에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눈치챈 순간, 돌연 공격자세를 취하고 태호를 향해 무작정 몸을 날렸다.

그러나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던 태호는 몸이 서로 맞부딪치려는 찰나 몸을 비켜버렸고, 잠시 허공에 떠 있던 웨이터는 아무런 완충장치도 없는 외국산 대리석 바닥에 다시 이마를 박고 고꾸라졌다.

그때 철규는 힐끗 태호를 일별하였다.그의 시선은 다음에 돌격해올 상대를 찾아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그러나 두 편의 대치상태는 미동도 않고 긴장 상태만을 유지하고 있었다.두 번이나 맞부딪쳐본 결과 폭력에 대처하는 태호의 기량이 정확하고 단호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검은 제복을 입은 40대의 지배인이 로비 안쪽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사태를 재빨리 수습하는 그의 태도는 세련되어 있었다.먼저 피가 흐르는 부하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꾸짖어 의무실로 돌려 보냈다.

부하직원들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포진을 손을 흩뿌려 내친 다음, 철규를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커피숍을 가리켰다.부하 직원들의 졸렬했던 안목을 사과하고 사태를 일찌감치 수습하지 못했던 자신의 불찰까지 사과했다.

두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는 배려가 뚜렷했다.커피 대접까지 받고 호텔을 나선 뒤에도 철규는 태호를 꾸짖을 수 없었다.말이 없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태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폭력을 쓰게 된 것 죄송합니다.그땐 가장 손쉽고 편리한 방법이었거든요. " "나한테 양해 구할 것 없어. 실은 나도 속시원해서 바라보기만 했거든. " "그런데 나는 따까리니까 상관 없지만, 선배님 행색도 남이 볼땐 무척 초라한가 봐요? 우리끼린 그런 걸 느끼지 못하겠는데…. "

"그들의 눈에 우리가 부랑자들처럼 보였다면, 한편으로는 섭섭한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냉정하게 가다듬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시골장을 떠돌아 다니는 난전꾼이 도회지 번화가를 누비고 다니는 세련된 화이트칼라로 보였다면, 그것보다 더 비능률적인 모습이 어디 있겠어.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한 우리들에게 불찰이 많았지. "

"하지만 그 지배인이란 자가 우리를 완전히 외계인 취급한 거 아세요? 살살 달래려들 때는 또 비윗장이 뒤틀려 참느라 애를 먹었습니다.가슴 속에서는 우리를 완전히 깔보고 있었으면서도 거드름을 피기는커녕 속셈을 눈곱만큼도 내색 않는 것이 얄밉고 구역질나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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