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송두율씨 변호 프로 만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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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MBC 'PD수첩'이 방영을 재고해달라는 대법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송두율과 국가보안법'편에 대한 방송을 강행했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시사적인 이슈들을 보도하는 것은 언론 본연의 임무로 이를 제한해선 안 된다. 그러나 보도 대상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다르다. 특히 시청자에게 감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매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방송심의규정은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을 다룰 때에는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국회의 국정감사나 조사 때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인 경우 이를 못 하게 제한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문제의 프로그램은 전반부에서 송씨가 지난해 9월 입국한 뒤 구속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뤘고, 나머지 부분에선 국가보안법에 관한 쟁점들을 부각시켰다. MBC 측은 프로그램의 균형을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핵심 부분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균형잡힌 프로그램이라 할 수 없다. 송씨사건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그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 인물인지 여부로 1심에선 이 부분 유죄가 선고됐다. 방송은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송씨가 단상에 서지 못했다는 자료화면 등을 그래픽으로 처리함으로써 이를 부인하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재판을 앞에 놓고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을까. 이러고서도 균형을 잡았다고 한다면 이는 산술적인 균형일 뿐이다. 더구나 제작진은 "우리 사회의 정신분열증적인 상황이 끝나기를 바란다"고까지 했으니 송씨 변호를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법부의 요청까지 무시하고 방송을 강행할 만큼 화급한 일은 아니다. 송씨사건 선고 이후 방영해도 늦지 않은 것이다. 이번 프로는 MBC가 특정 의도를 가진 제작이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