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코아 화의 기각…기업들 무분별 화의신청에 일단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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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뉴코아의 화의신청이 기각됨에 따라 이미 화의를 신청중인 한라.청구.미도파.쌍방울 등 다른 기업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법원이 뉴코아에 대해 개정 화의법을 처음으로 적용, 화의 신청을 기각한 것은 앞으로 방만한 경영으로 파탄에 이른 대기업의 사주가 경영권을 보장받을 목적으로 화의를 신청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동안 법원뿐 아니라 외국언론에서도 화의제도의 비효율성과 형평성에 대해 논란이 있어온 게 사실이다.특히 BIS 자기자본비율을 충족해야 하는 금융권이 대손충당금 적립부담을 피하기 위해 화의를 신청한 대기업에 우대금리를 적용해줘 무리한 차입경영에 의존해온 기업은 금융혜택을 받고, 건전한 기업은 고금리에 시달리게 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뉴코아측은 일단 법원의 결정이 채권자협의회의 의견을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으나 법정관리 신청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하지만 뉴코아의 앞날은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회사 일각에서는 결국 청산절차를 밟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우선 전체 채권액 2조5천억원중 65% (1조6천3백억원) 를 차지하고 있는 제일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법정관리보다 청산을 통한 조기 채권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급보증분을 제외한 1조2천억원의 채권중 1조원어치에 대해 부동산 담보를 잡고 있어 청산에 들어갈 경우 60~70%선의 채권을 회수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법정관리로 갈 경우 뉴코아그룹 주식의 9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김의철 (金義徹)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느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구법으로는 법정관리로 들어가면 金회장의 주식이 모두 소각되지만 지난 2월24일 개정된 신법으로는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어쨌든 뉴코아에 대한 법원의 화의기각은 다른 기업들에 판단의 잣대로 작용할 것 같다.

이미 화의를 신청중인 ㈜미도파는 뉴코아의 화의기각 직후 대책 회의를 열고 향후 미칠 영향을 검토중이다.미도파측은 화의개시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라그룹은 만도기계 등 계열사의 부채가 상대적으로 적어 화의개시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면 서도 내심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쌍방울 역시 채권자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뉴코아의 화의신청 기각이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쌍방울은 무주리조트에 대한 해외투자 유치 등을 통해 자구책 이행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청구는 1조2천억원의 채무를 변제하지 못해 지난해 12월26일 화의를 신청, 자산보전처분이 내려진 상태이지만 법원의 기각 가능성에 대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극동그룹은 주력기업인 극동건설에 대해 화의신청을 준비하던중 법정관리신청으로 궤도를 수정해 지난달 16일 재산보전처분 결정을 받은 상태다.

(주) 나산 역시 처음에는 화의신청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법정관리를 신청해 재산보전처분결정 (3월19일) 을 받았으며 특히 안병균 (安秉鈞) 회장의 동생 안병오 (安秉五) 씨가 공동재산보전관리인으로 선임돼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금융기관들은 이번 기각사례가 선례가 될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뉴코아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화의기각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조만간 29개 금융기관들로 구성된 채권단 회의를 소집해 법정관리 조기 추진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금융기관들은 또 재판부의 기각 취지를 상당부분 이해하면서도 회생 가능성을 면밀히 살피지 않은 채 여신규모가 크고 채권자가 많다는 이유로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기원·홍승일·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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