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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지점이 대형마트 속으로 들어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여기 은행 맞나요?” 5월 29일 서울 천호동 홈플러스 강동점 안에 문을 연 하나은행 지점을 찾은 고객 구경옥(57)씨는 처음엔 긴가민가했다고 한다. 구씨는 이곳에서 딸 이애란(27)씨와 함께 새로 출시된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했다. 그는 “처음엔 커피숍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해서 약간 어리둥절했다”며 “대형마트에 온 김에 금융 상품에 가입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딸 애란씨도 “주말과 저녁 늦게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월~금요일 문을 여는 은행 지점의 변신이 시작됐다. 은행 지점이 365일 문을 여는 대형마트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지금도 대형 복합상가의 지하엔 대형마트, 1층엔 은행이 들어간 곳이 있다. 하지만 은행은 평일 오전 9시~오후 4시의 영업 시간을 지키기 때문에 대형마트의 영업 시간과는 관계가 없다.

이에 비해 하나은행이 홈플러스 강동점에 개설한 지점은 대형마트의 영업일에 맞춰 365일 문을 연다. 그것도 오후에 장 보러 오는 고객을 위해 저녁까지 영업한다. 이런 점포는 5월 22일 홈플러스 병점점(화성)에 이어 두 번째다. 6월 8일엔 홈플러스 중계점(서울)도 개설된다.

이들 점포는 평일은 물론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오전 11시~오후 8시 영업을 한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선 할 수 없는 신규 계좌 개설이나 예금 상품 가입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대형마트에 들어간 만큼 구조도 다르다. 무엇보다 출입문이 따로 없다. 대형마트의 한 코너에 들어가는 형식이다. 쇼핑 고객은 카트를 끌고 지점에 들어갈 수 있다. 심야엔 유리벽을 막아 점포가 밖에서 보이도록 설계했다.

강동점엔 새로운 형태의 고객 번호표 장치가 설치됐다. 직원들의 사진과 담당 업무를 화면에 올려놓고 고객이 고르게 했다. 출입통로 주변엔 입출금 창구가 있고 점포 중앙엔 라운지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주위로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코너가 설치돼 있다.

은행원들의 근무 방식도 다르다. 4일 근무하고 3일 쉬는 것이 원칙이다. 기존 지점(오전 9시~오후 4시)보다 문을 여는 시간이 두 시간 많아 하루를 더 쉬는 것이다. 그래서 강동점 직원 9명은 모두 지원자다. 특히 서울에서 처음 문을 연 강동점은 자녀를 둔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이 지점의 임진연 과장은 “오전에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고객의 이용 형태도 다르다. 하나은행 병점 홈플러스지점 이원영 차장은 “토요일과 일요일 이용객이 평일의 두 배 수준”이라며 “새로 통장을 만들거나 금융 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취급하는 금융 상품도 달라진다. 하나은행은 홈플러스점에서만 가입할 수 있는 정기 예·적금을 내놓을 계획이다. 특정한 시간대에 오거나 자녀를 데리고 찾아오면 우대 금리를 주는 방식이다. 홈플러스와 함께 공동 마케팅도 할 예정이다.

마트 속 은행 점포는 홈플러스와 하나은행이 1년 전부터 준비한 것이다. 이런 지점이 더 확대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대형마트 입장에선 상품 판매 공간을 줄여 은행에 할애한 만큼 그에 걸맞은 성과가 있어야 한다. 홈플러스 강영일 PR팀장은 “365일 문을 여는 은행이 있다는 점이 다른 대형마트와 차별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입장에서도 다른 곳에 지점을 내는 것 이상의 이익을 얻어야 한다. 하나은행은 6개월쯤 지켜본 뒤 이런 식의 영업점을 더 낼지 결정할 방침이다.

하나은행 이종진 마케팅기획부장은 “일반 점포를 내 고객을 1만 명 확보하기 위해선 1~2년이 걸리지만 새 점포는 대형마트 고객을 흡수해 3~6개월에 이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저녁 시간이나 휴일에 은행을 찾을 일이 있는 주변의 기존 하나은행 고객들도 대형마트를 더 많이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과 대형마트가 ‘윈윈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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