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세상의 남편들이여 등 긁어줄 마누라있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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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신부의 주변에는 여자들은 많아도 가려운 등을 긁어줄 마누라는 없다.주례는 불나게 서면서 여자 하나 못 얻었으니 때론 너무 억울하지 않나 싶기도 한데 종신 홀아비를 자처한 탓인지 '홀아비는 이가 서 말' 이란 말에는 눈이 흘겨진다.

'금석하석 견차양인 (今夕何夕 見此良人)' , 즉 오늘 밤은 어떤 밤이기에 이리도 좋은 사람 만났는가 라는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몸 져 누우면 곱살한 색시의 보살핌을 받고 싶지 않은 사람 있을까만 그래도 세상 천지에는 준엄한 독신의 계율을 지키면서 청청 밤하늘의 별처럼 살아가겠다는 신부가 40만 명을 넘는다.

"저렇게 무슨 재미로 살아간담!" 이처럼 신부를 동물원의 원숭이 대하듯 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요즘엔 무척 달라졌다.

"아아! 나도 신부나 됐으면…" 하고. 하루 아침에 멀쩡한 사나이들이 '고자' 가 되겠다는 것이다.세상의 부인들이 염라대왕 왕방울 눈만큼이나 두려운건가.

어느날, 주일학교 어린이 네 명을 태우고 앞산으로 놀러갔다. 유별나게 머리에 장식을 많이 달고 있던 한 애가 머리핀 한 개를 차 속에 떨어뜨리고 갔다.그게 화근이었다.어느 여자 태우고 놀러 다녔느냐는 둥 '부엌도우미' 여자가 호되게 몰아세웠다.

물적 증거까지 나왔으니 꼼짝없이 냉전을 겪었다.아, 이런게 세상 남편들을 골병들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또 한번은 한 달째 위통을 앓다가 약국에 가서 소화제 한 봉지를 사왔다.몇 알을 먹다 그만 배가 뒤틀리고 말았다.아뿔싸, 이런 낭패가…. 약사가 그만 여자들의 임신자가검사약인가 뭔가 하는 약을 넣어준 것이다.

때마침 이 약을 본 '부엌도우미' 는 분노를 터뜨리면서 결국에는 '이혼' 을 선언하고 내 곁을 떠나버리는게 아닌가.

세상의 남편들이여! 살고픈 의욕이 떨어지더라도 꾹 참고, 평생 마누라 없이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온갖 번뇌 털어버리고 오늘도 '금의환가' 하시도록.

정순재 〈경산 용성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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