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동점포, 지방자치단체들에 귀하신 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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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첨단 장비로 중무장한 은행의 이동점포 차량들이 요즘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로 보내달라고 경쟁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것.

시중은행이 보유한 이동 점포 차량은 전국 각지를 이동하면서 은행 브랜드를 홍보하고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제작됐다. 차량에는 자동입출금기(ATM)와 은행 업무용 무선 단말기, 대형 전광판등이 갖춰져 있다.

신한은행이 보유한 버스 개조 차량은 VIP 상담실까지 갖추고 있다. 여기에는 테이블과 소파, PDP TV와 냉장고까지 있다. 은행별로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트럭 개조비용과 전광판, 은행장비 등의 투자비가 차값을 포함하면 대당 10억원에 육박할 정도다. 현재 하나, 우리, 신한, 농협, 대구, 부산은행 등이 이동점포 차량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자체들이 서로 ‘이동 점포를 보내달라’며 은행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이동 점포 차량에 부착된 대형 전광판 때문이다. 이동 점포 차량은 차량에 부착된 대형 전광판으로 지자체 홍보영상을 무료로 상영해주고 있다. 지자체들이 도심 건물 옥상에 설치된 전광판에 광고를 내려면 수천 만원이 들지만 이동 점포 차량만 잡으면 돈 한 푼 안 들이고 시정 사항을 홍보할 수 있다. 지자체들에게는 은행 이동 점포 차량이 지자체를 홍보할 수 있는 훌륭한 매체인 셈이다.

신한은행은 트럭을 개조한 이동점포 차량 1대를 바다 건너 제주도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9.5t짜리 차량은 목포항에서 배편으로 제주로 이동하게 된다. 이 은행의 이동점포 이름은 ‘새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며 은행업무를 수행한다’는 뜻의 ‘뱅버드’. 제주특별자치도는 서귀포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홍보하기 위해 제주은행에 이동점포 차량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이동점포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제주은행은 모기업인 신한은행에 지원을 요청했다. ‘뱅버드’는 29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과 수행원, 기자들은 상대로 환전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공짜 지자체 광고나 해주는 차량이라고 이동 점포를 얕잡아 보면 안된다. 이동 점포는 일반 점포를 능가하는 영업실적을 올리기도 한다. 신한은행은 일본 황금연휴 시즌인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서울 명동에 이동 점포를 설치해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총 35만달러(4억원) 어치의 환전 실적을 올렸다. 환전 수요가 많은 공항 소재 은행점포를 제외한 일반 점포 환전액이 하루 1만~2만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뱅버드’에 탑승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동 금융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신한은행 조재근 과장은 “이동 점포 운영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지자체 축제가 몰린 봄과 가을에 차량 지원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며 “지원 요청이 많아 차량 점검 기간을 제외하곤 연중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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