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해외동포정책은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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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새 정부가 교민청 (한민족청) 신설을 유보한 채 재외동포재단을 활용하는 쪽으로 동포 (同胞) 정책을 몰아가는 느낌이다.교민청 설립과 이중국적 허용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지만 외교통상부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반발을 이유로 주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실 중국은 50개가 넘는 국내 소수민족의 단합을 우려해 관련정부의 움직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화교 (華僑) 정책에는 남달리 적극적인 나라다.

중국 정부는 홍콩이 본토에 귀속된 후 해외활동 중인 홍콩 출신 중국계 두뇌들을 겨냥해 이중국적 발급을 공세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해외에서 훈련받은 우수노동력을 본국 발전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반영한다.그렇다면 우리의 접근방법상 아둔함이 문제지 중국의 반발이 교민청 신설에 장애라는 것은 정부관료들의 피해의식에 불과하다.

동포정책의 한 측면은 세계 각지에 흩어진 5백50만 한민족이 '제2의 조국' 에서 제 몫을 챙길 수 있도록 모국 정부가 터를 닦는 데 있다.그리고 해외동포들이 모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국내활동에 불편을 덜어주는 것이 동포정책의 또 다른 측면이다.

2백만 재미동포 가운데 김창준 (金昌準) 연방하원의원 하나 있을 정도의 모기만한 목소리론 미국에서 주목을 끌 수 없다.

적어도 재미동포들이 밥굶는 지경은 벗어났으니 이제 이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때가 됐다.아울러 여전히 쇄국적인 사고를 떨쳐버리고 해외인력들이 모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

이중국적이란 용어가 부담스러우면 '한인증 (韓人證)' 발급을 통해 실질적인 문호를 열어놓으면 될 일이다.

교민청 운영에는 큰 돈이 들지 않는다.국내기구는 최소한으로 하되 해외지부에 한인증 발급권한만 부여하면 조직은 자체 힘으로 굴러간다.

교민들의 권익증대를 위한 사업도 계획하고 현지의 목소리를 키우는 노력도 교민청 해외지부가 할 일이다.교민청 신설과 이중국적 허용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영국.중국.프랑스.이스라엘.멕시코 등 세계 47개국이 여러 형태로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으며 미국도 67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이중국적을 문제삼지 않는다" 고 결론내린 바 있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선 더더욱 해외의 전문지식과 재원을 국내에 유치할 수 있는 전향적인 동포정책이 절실하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잘못을 범하지 말기 바란다.

길정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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