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포커스]대학 화장실벽은 향기나는 대화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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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존재의 의미' 를 말하자면 화장실이란 '배설' 을 위한 공간이다.

그러나 대학 화장실의 정체성을 논하자면 - .그 곳은 '배설+α' 다.

원초적 본능을 해결하기 위한 것을 '1차적 배설' 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대학 화장실은 게시판.낙서판 혹은 벽을 통한 다양한 의견표출, 감정의 발산 등 '2차적 배설' 도 함께 시도되는 '복합공간' 으로 이름해도 괜찮을 듯하다.

2차적 배설의 증거는 바로 '낙서' .은밀하게 공유된 장소란 특성 때문에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물론 불특정 다수에게 고민 상담을 청하는 것일 게다.

공감.조언, 때론 질책. 간혹 '꼬리에 꼬리를 문' 토론이 이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글만을 남길 칸을 고집하는 '단골' 이 생기는 것은 또 무슨 심리일까. 연세대 문과대 화장실에는 칸칸마다 문 안쪽에 종이와 볼펜이 달려있다.

문과대 학생회에서 학생회 사업을 알리고 학생들의 의견을 받고자 붙인 것. 화장실 게시판에 끊임없이 제기됐던 학생들의 숙원인 사물함 설치가 이번 학기에 이뤄지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성균관대의 '행소문학회' 는 화장실을 보다 '향기나는 공간' 으로 만들고자 화장실에 자신들이 지은 시를 붙인다.

복병은 '작품' 을 북북 찢어버리는 청소 아줌마다.

떼고 붙이는 신경전 속에 싹트는 작은 여유. 그렇게 대학은 살아있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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