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말하는 ‘시가 있는 아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1998년 1월 14일 연재를 시작한 ‘시가 있는 아침(이하 ‘시아침’)’이 12년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27일 3000회에 이른 것은 독자의 변함 없는 성원 덕분이다. 독자들은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서너 달씩 매일 아침 ‘시 배달’을 했던 시인 필자들과 내밀하게, 그러나 뜨겁게 소통했다. 수시로 e-메일이나 편지를 보내 필자들을 격려했다. 온라인에서 친해진 뒤 오프라인에서 돈독한 인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시아침’ 필자들은 “독자는 나의 힘”이라고 말한다.

◆“매일 시 읽으니 부자 된 기분”=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최현태(53·여·대구시 황금동)씨는 ‘시아침’ 8년 애독자다. 최씨는 “나만의 아침은 아이들 학교 보내고 오전 9시 30분부터 ‘시아침’과 함께 시작한다”고 말했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시아침’을 감상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는 것이다. 최씨는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 시절부터 좋아하는 시를 소리 내서 읽어버릇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아침’ 애독자가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2007년 김선우(39) 시인의 ‘시아침’ 연재 글에 반해 ‘열혈팬’이 됐다고 했다. 시 낭송회 등 김 시인이 참여하는 오프라인 행사를 빠트리지 않고 쫓아다니다가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최씨는 김 시인의 서정시가 “관능적이면서도 쿨하다”고 평했다. “젊은 사람답게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상처를 입더라도 유연하게 극복해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것이다. 특히 “김 시인의 시 ‘사랑의 빗물 환하여 나 괜찮습니다’ 중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라는 구절이 찡하다”며 “10년 전 남편을 사별한 내 심경에 꼭 맞아 떨어지는 표현”이라고 했다. 그는 “매일 아침 시를 읽기 시작한 후로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선지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기대했다가 충족되지 않더라도 예전처럼 상처받는 일이 사라졌다”고 고마워했다.

[일러스트레이션=강일구 ilgoo@joongang.co.kr]

주수자(55·여·서울 평창동)씨는 ‘시아침’ 덕분에 시인이 됐다. 2000년 한 문예지를 통해 소설로 등단한 주씨는 2003년 소설집도 펴냈다. 시 공부를 시작한 건 2007년 고형렬(55) 시인의 ‘시아침’ 연재를 접하면서부터. 주씨는 “시 선택도 좋았지만 해설이 유익해 시 읽는 법을 절로 익히게 됐다”고 했다. 고 시인의 연재 원고를 교재 삼아 자신이 속한 독서토론회에서 시 창작을 공부한 주씨는 내친 김에 고 시인의 시창작 강좌를 듣게 됐다. 등단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올초 시집 『나비의 등에 업혀』를 펴냈다.

◆“시아침은 이른 아침 정화수 한 잔”=문정희 시인은 “때로는 악취 나는 사건까지 전하는 신문 지면에서 ‘시아침’은 그 누구도 침범치 않은 정화수같은 신선함을 선사한다”며 “그래서 오랜 사랑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인 권영민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시아침’의 장기간 연재는 외국 신문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라며 “신문 독자들이 이를 하나의 문화 체험으로 적극 껴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신준봉 기자, 일러스트레이션=강일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