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괌청문회 '프로 대 아마'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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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6일 (현지시간 25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대한항공기 괌사고 조사 청문회에선 겸양을 미덕으로 삼는 '한국적 문화' 가 도마위에 올랐다.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 (NTSB) 는 조종실내 하급자인 부기장.기관사가 정상착륙 실패를 먼저 알아챘고 기장의 대응이 더 늦었던 것으로 나타난 녹음기록을 빗대 "부기장에서 기장으로 승격되는 기준이 연공서열이냐" 는 질문을 던지며 '한국 문화' 공격에 나섰다.

NTSB는 이어 미국 항공사 UA가 개발한 조종실내 의사소통 등 관리 (CRM) 프로그램을 한국이 도입했는지 물었고, 이미 도입했다는 대답을 듣자 "기장.부기장.기관사간 의사소통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대로 응용하지 못한 것 아니냐" 고 꼬집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측은 안타깝게도 '한국적 문화' 가 문제였다면 기장보다 13살이나 많은 기관사가 제일 먼저 공항이 보이지 않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기장에게 알려주기에 오히려 자유롭지 않았겠느냐는 역공을 펴지 못했다.

또 기관사가 기장.부기장에게 반말을 쓸 정도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는데도 대화녹음 기록을 영어로 번역한 뒤 그들이 존대말과 반말의 뉘앙스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캐묻지도 못했다.

군 출신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조종사 문화에서 공사 출신 예비역 중령인 부기장이 비 (非) 공사 출신으로 예비역 소령인 두살위 기장에게 할 말을 제대로 못했을 리 없다는 '한국적' 주장도 물론 나오지 않았다.

논쟁거리에 대한 논리적 대응 대신 "조사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는 말로 6시간여에 걸친 증언을 마친 뒤 '한국적 문화' 의 문제점이 청문회 이슈로 등장했다는 미국 언론 보도가 쏟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대한항공측은 부랴부랴 미국 주요 언론사 취재기자들을 청문회장 밖으로 불러모았지만 청문회장 이외에서 사고에 대한 인터뷰를 금지하고 있는 NTSB 감시로 또 한번 속을 끓였다.

'한국적 문화' 를 이슈로 부상시킨 NTSB는 청문회에서 대당 20만달러나 하는 신형 항공안전장비인 EGPWS 도입계획을 추궁했고, 앞으로 도입하는 항공기에 장착하겠다는 대한항공측의 답변이 나오자 모든 항공기에 장착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밀어붙이기도 했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붙여 놓은 한판의 복싱게임이 눈앞에 떠올랐다.

호놀룰루에서=권영민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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