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작은것과 큰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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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작은 것이 큰 것을 만든다는 이소성대 (以小成大) 의 사상 속에는 큰 것의 위대성 (偉大性) 을 인정하지만 작은 것의 가치도 소중하게 아는 정신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작은 것의 토대가 없이 큰 것을 이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는 작은 것은 쓸모없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가치는 큰 것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큰 것에 가치가 더 들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도 구경거리로는 쓸모있다.

동양 제일만 돼도 자랑거리며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좋은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것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큰 것만을 생각하면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낭패하듯이 작은 힘으로써는 감당하기 어렵고 결국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작은 힘으로써도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

정부나 기업이나 행정조직이나 개인을 막론하고 자기 힘으로 능히 해낼 수 있으면서 경쟁력이 있는 그런 분야를 개척하고 개발해야 장기적으로 튼튼하게 자기발전을 기할 수 있다.

남들이 하는 것이라 해서 다 우리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큰 것만을 너무 강조하면 양적인 것에 치우치게 되고 작은 것 속에 들어 있는 진주를 경시하기 쉽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도 있듯이 작은 것을 잘 키워 세계적 가치로 만들 수도 있다.

스위스의 시계나 일본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작지만 세계를 휩쓸고 있다.

작다고 해서 힘이 없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스위스나 일본 경제의 상당부분을 그러한 조그만 것들이 만들어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국 수출의 50%를 담당하는 기업은 19명 미만의 직원을 가진 작은 기업들인데 비해 5백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큰 기업이 담당하는 수출 비중은 미국 수출의 5%를 담당하는데 그친다고 미국의 미래학자 나이스비트는 말하고 있다.

미국도 80%가 중소기업 아닌가.

옛날에도 작은 나라 덴마크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가 큰 국력을 자랑한 때도 있었으며 지금도 스위스 같은 작은 나라가 자신의 특성에 맞는 체제를 개발해 높은 생활수준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참고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도 수익률 면에서 경쟁력을 가진 업체가 많아진다면 그만큼 한국 경제는 안정될 것이다.

한국은 발전과정에서 중점육성 정책의 하나로 수도 서울을 국제적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것은 국위와 홍보를 위해서, 또는 외국의 투자유치와 중앙집중적 관리를 위해서 한동안 필요한 정책이었다고 인정된다.

그러나 수도 서울은 이미 너무 비대해졌고 수도 키우기 정책은 위험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작은 것이 큰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도 중요하다.

또한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이룬다는 이소성대의 의미 속에는 무리한 속도와 무리한 확장을 반대하는 뜻도 들어 있다.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일을 벌여야 한다는 말이다.

경부고속철도의 부실공사도 그렇거니와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큰 일을 벌여 일을 망쳐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는 '맹자 (孟子)' 에서 한 농부가 벼가 더디 자라는 게 답답해 억지로 모를 뽑아 큰 것처럼 해놓고 만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나라나 개인이나 먼저 자기의 힘에 맞게 발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는 작은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오늘날 금융대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 작은 것 속에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의미를 우리가 바로 인식해 이치에 맞게 이용한다면 그것은 약진 (躍進) 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맹수보다 신체적으로는 작으며 약자라는 현실을 자각했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다른 길을 걸은 것이 아니겠는가.

송천은〈원광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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