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순리냐, 배짱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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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1국>
○·쿵제 7단 ●·이세돌 9단

제17보(128~135)=128을 하나 선수한 쿵제 7단은 한숨을 크게 몰아쉰다. 흑의 중앙 집이 풀어 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중앙 집을 그대로 허용하면 진다. 중앙 집에서 파괴의 단서를 찾으려면 A의 흠집을 남겨둬야 한다. B쪽에서 들여다보는 바둑이 되면 안 된다. 그런데 ‘참고도1’ 흑1을 당하는 순간 백은 살기 위해 필연적으로 4를 두어야만 한다. 쿵제의 눈에 이 비극적인 코스가 환하게 보인다.

하지만 ‘참고도2’ 백1로 미는 수는 꼭 두고 싶다. 이 수에 흑2로 받아주기만 한다면 백은 아예 중앙으로 직행할 수도 있다. 순리를 따를 것인가. 배짱으로 눈 감고 밀어버릴 것인가. 망설이던 쿵제는 마지막 초읽기가 숨가쁘게 쫓아오자 황급히 130으로 두고 말았다. 순리를 좇은 정수니까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실전의 참혹상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131의 선수는 얼마나 크고 기분 좋은가. 백은 후수로 살아야 했고, 이때를 기다려 135로 날아가니 중앙은 일시에 검은 베일이 쳐진 듯 까맣게 변하고 만다. 이건 앉아서 죽는 길이었다. 다음 판이라도 기약하려면 ‘참고도2’ 백1로 밀고 옥쇄하는 게 나았다. 이세돌 9단은 물론 용서가 없는 사람이지만 형세가 좋은 만큼 흑2로 받았을지 누가 아는가.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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